<대변혁 통신장비 산업>8회-카스(상)

초등학생인 한우주 군은 일본 NHK-TV에 등장하는 씨름(스모)선수들이 낯설지 않다. 그는 홍콩 스타TV에 출연하는 인기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을 잘 알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 중국인 여가수의 팬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TV에서 일본어·중국어·영어 등 낯선 언어들을 접해왔기 때문에 외국어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처럼 한우주 군이 바다 건너편 세계 각국의 문화에 익숙한 것은 집에서 위성방송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국경을 넘어오는 방송전파(전파월경:Spillover)로 인한 문화침탈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욱 빨리, 한 개라도 더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자국의 방송전파를 국경 밖으로 내보낼 것인지가 고민거리일 뿐이다.

외국 TV 전파를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장비는 안테나와 수신기. 특히 TV 위에 올려놓는 세트톱박스인 위성방송수신기는 지구촌 문화를 창달하는 핵심장비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들어 위성방송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70년대에 본격화한 위성방송은 방송사업자가 일반 지상파TV처럼 하늘(공중)에 방송전파를 흩뿌렸기 때문에 일정 수신장비만 있으면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특정 가입자들만을 위한 유료방송이 주류로 등장할 태세다.

특히 지난 94년 DVB(Digital Video Broadcasting) 표준이 공표된 이래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위성방송 관련 장비가 지상 정보통신망 포설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안방 TV화면을 통해 리모컨만으로 인터넷 브라우징과 전자상거래를 즐기고 전자우편을 교환하며 영화까지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유료 위성방송시대와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여는 첨단기재가 수신제한시스템(CAS:Conditional Access System), 속칭 카스다.

카스는 첨단 암호화, 복호화(암호풀기) 기술의 결집체. 모든 차세대 디지털 방송의 핵심이 되는 기술로 시청자격 제한과 유료채널 제어를 비롯해 각종 유료 통신서비스에 대한 인증 및 이용자격 부여에 따른 요금부과 기능 등을 구현한다. 궁극적으로 차세대 양방향 방송·통신의 상업화를 실현할 수단인 것이다.

올해 세계 방송·통신용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규모는 약 57억 달러. 향후에도 매년 16씩 고성장해 오는 2003년에는 72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표 참조

이 중에서 카스를 채택하는 유료채널이 70% 이상을 차지, 그 가치가 더욱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카스 기술은 국가별로 최고급 보안하에 해외 유출이 통제되고 있다. 자국의 카스용 암호 및 복호 알고리듬을 공개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카스 기술을 넘겨 받았든 자체개발했든 카스 솔루션을 보유한 위성방송·통신사업자들은 『우리 회사의 디지털 위성방송과 위성통신을 이용하려면 우리의 카스를 통째로 사들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자체 카스를 보유한 위성방송사업자가 6개 정도에 불과하니 「과점」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 이렇듯 과점이 보장된 카스를 보유한 사업자로는 언론재벌 머독 계열의 NDS, 프랑스의 비아세스(Viaccess)와 까날플러스, 남아공의 이르데토(Irdeto), 스위스의 나그라(Nagra), 네덜란드의 크립토웍스(CryptoWorks) 등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9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카스 개발에 착수, 97년 5월 한강시스템·자네트시스템·텔리맨 등 3개사가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일단은 텔리맨이 독자적인 128비트 암호 알고리듬과 이를 적용한 스마트카드(인증카드)를 개발, 해외에 위성방송·통신 수신장비 일체를 수출하는 결실을 올렸다. 특히 텔리맨은 최근 유럽방송연합(EBU)과 유럽통신표준기관(ETSI)으로부터 카스 인증을 획득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