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한해 전자산업의 수출이 531억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95년 400억 달러를 돌파한 지 4년 만에 5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보도다. 전체 수출액에서 전자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37%나 돼 우리나라 부동의 제1 수출산업임을 입증했다. 또한 지난해 전체 무역흑자 239억 달러 가운데 82%를 전자산업 부문이 기여했다고 한다. 일단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수출 500억 달러 돌파가 반드시 반가운 소식만은 아닌 것 같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선 전자산업의 수출은 반도체·이동전화·모니터·브라운관·LCD 등 5대 품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5대 품목이 전자산업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이고, 이를 포함한 10대 품목은 무려 72%에 이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전자산업 분야의 고른 발전 정책방향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수출 5대 품목이 반도체·브라운관·무선통신의 부품과 부분품 등 수입 5대 품목과 분야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수출 주력품목들에 소요되는 핵심부품과 부분품이 대부분 외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기존의 지적과 통계들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전자산업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5대 품목의 비중 역시 수출 5대 품목의 그것과 비슷하게 61%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산 부품을 채용한 전자제품의 수출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반대로 비교적 국산 부품 채용률이 높았던 가전 및 전자부품의 급격한 감소 현상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출을 주도한 것은 컬러TV와 에어컨 등 가전품목들로서 전자산업에서 차지하는 수출비중은 30%나 됐다.
그러나 지난해 가전은 11%로 줄어들었고 전자부품 역시 20% 이상에서 14%대로 낮아졌다. 반면 반도체와 이동전화 등은 10%대에서 각각 32%와 38%로 급증했다. 이같은 사례들은 결국 전자산업 수출 500억 달러 돌파가 수치 달성이나 외형 신장에 치중한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출 500억 달러 돌파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기록은 비록 지난 87년 100억 달러를 돌파한 지 12년 만의 일이긴 하지만 그 증가율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증가율을 크게 앞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예컨대 같은 기간에 전체 수출액은 472억 달러에서 1437억 달러로 3배 증가에 그쳤지만 전자산업은 4.5배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전자산업이 제1 수출산업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수출신장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견인하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이제 수출 주도산업으로서 전자산업을 어떻게 내실있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으로 모아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책당국과 수출기업들에 한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제부터라도 주요 수출품목과 수입부품이 크게 겹치지 않는, 내실있는 600억 달러 혹은 1000억 달러 수출목표를 세워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