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인터넷 바로보기4

최근 국내 굴뚝산업을 대표하는 경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컨설팅 업체 사장은 『앞으로 인터넷비즈니스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귀가 번쩍 뜨이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발언의 속내엔 잠재고객을 유인하는 컨설팅비즈니스 특유의 사업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도 같다. 설사 그렇다 해도 인터넷 열풍에 대해 콤플렉스를 넘어 위기감마저 갖고 있는 제조업체 CEO들에게 이같은 지적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를 맞아 마땅한 대응전략을 찾지 못해 고민중인 굴뚝산업 CEO들의 눈빛은 「당신이 e비즈니스의 최적임자」라는 말 한마디로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은 듯 싶었다.

실제로 굴뚝산업으로 표현되는 제조업체들의 처지는 요즘 누가 봐도 말이 아니다.

세인들의 관심이 모두 인터넷업체로만 몰리면서 기업의 젖줄인 주가와 인력관리가 안돼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는 게 경영층의 공통된 푸념이다.

일부 대기업 내부에선 이제 「역차별」이란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자신들이 싹쓸이했던 증시자금과 좋은 인력들이 최근 벤처붐을 타고 속속 블랙홀처럼 인터넷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형국을 보는 마음이 오죽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이같은 사정은 흔히 얘기하는 신발, 섬유 등 사양산업은 물론이고 첨단업종으로 꼽히며 의기양양했던 일부 IT산업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격세지감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온라인 전문업체만 보면 괜히 주눅드는 이같은 상황에서 인터넷비즈니스 굴뚝산업 CEO들의 적임자론은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실현가능성 여부다. 현재 굴뚝산업 CEO들이 인터넷시대를 맞아 직면한 도전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온라인전문업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창출해내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도전이고, 두번째는 인터넷으로 새롭게 열린 사업기회들을 어떻게 잡아나가느냐의 문제다.

먼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도전은 주로 온라인 전문업체들의 시장선점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흥미를 끌 만한 유용한 「콘텐츠」를 활용해 사람을 모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커뮤니티에 속한 이들이 공동판·구매 등을 통한 「커머스」를 하는 식이다. 이른바 인터넷 비즈니스의 고전적인 3C공식이다. 하지만 이제 온라인 비즈니스는 한계에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업유형도 나올 만큼 나왔고 수익성 역시 여전히 가능성 수준에서만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온라인상의 사업만으로는 파괴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비즈니스 발전단계를 볼 때 인터넷사업은 순수한 온라인사업으로 시작해 오프라인사업과의 결합으로 끝날 때 진정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이제까지의 온라인 시장싸움은 오픈게임에 지나지 않고 오프라인의 대기업들과 결합된 인터넷비즈니스야말로 메인게임이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이는 전세계에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터넷시장의 80% 이상은 여전히 B2B모델이 차지하고 있는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앞으로의 문제는 오프라인의 기업들간 거래를 어떻게 e비즈니스로 묶느냐에 달려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인 B2B모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역시 해당분야의 CEO다. 그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인터넷기업들은 분명 해당 산업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들은 인터넷 등 정보시스템 기술의 활용분야를 좀더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기존 굴뚝산업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점과 이에 따른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요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이 분야의 경영층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재벌조직은 오히려 B2B시장에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같은 측면을 고려할 때 굴뚝산업 CEO들에겐 두가지 방안이 가능하다. 대기업들이 거느리고 있는 분야별 기업들을 프로세스별로 묶어 해체한 후 협력업체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안이다. 핵심역량을 극대화하면서 파트너들과 협업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선 고려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통합의 시대(Convergence)에 걸맞은 발빠른 대응이다. 얼마전 세상을 놀라게 한 AOL의 타임워너와의 합병이나 연초 일본의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사의 그랜드 합병이 좋은 예다. 이 모두가 고객을 중심으로 합쳐진다는 점에서 종전의 기술에 의한 통합과는 성격이 분명 다르다.

앞으로는 굴뚝산업과 온라인, 미디어 모두가 묶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군이 B2B모델을 이끌 것이고 이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이 바로 버티컬 조직성격으로 고객을 대응해온 재벌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젊은 선수」들과 비교해 모르는 것에 너무 겁먹지 말고 차분히 자신이 갖고 있는 리소스와 가치를 고려해 인터넷과의 만남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승산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인터넷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각이 전제돼야함은 물론이다. 이제 굴뚝산업 CEO들이 나설 때다.

<김경묵 인터넷부부장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