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를 맞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통신 산업 또한 지난 2년간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인프라 지출 감소와 함께 유선 서비스의 절대 투자 규모가 감소했다. 또 통신사업자간의 상호접속료 계약, 캐리어들의 서비스 지역 구분, 요금 재조정 등과 같은 문제들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필리핀 통신 산업의 최근 현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활발한 인수·합병
필리핀 장거리 전화 회사인 PLDT는 스마트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케이블사업자인 홈케이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 인포컴을 매입한데 이어 전화회사 필텔의 경영권도 확보했다.
또 글로브텔레콤의 모회사인 아얄라도 이슬라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지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영국의 케이블 앤드 와이어리스(C&W)는 이스턴텔레콤(ETPI)에 대한 보유지분을 낮추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스웨덴의 텔리아AB는 디지털텔레콤(DigiTel)의 지분을 늘리고 있다.
PLDT는 필텔의 유선사업부를 흡수하는 대신 스마트에 셀룰러 부문을 넘겨주고 ETPI에 있는 C&W사의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브사도 이슬라에 자사의 유선 사업부를 넘겨주는 대신 셀룰러 부문을 흡수할 계획이다. 또 바얀텔레콤(BayanTel)도 익스프레스커뮤니케이션(ExtelCom)의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이어 자사의 유선 및 케이블 TV 사업부인 「스카이 케이블/선케이블」과 스카이 인터넷을 통합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적 어려움과 높은 금융비용에 직면한 ETPI와 필리핀 전신·전화회사(PT&T)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이러한 대규모 업체와 경쟁을 할 수 없다. 몇몇 업체들은 자본 부족으로 인해 네트워크 증설도 추진할 수 없는 실정이다. 또 대형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 줄 백기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이들 업체는 인수업체를 찾는데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 위기로 인해 이들 소규모 업체들의 회사가치가 낮아지면서 인수 매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유선사업의 기회
1998년 유선통신 부문은 총 2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전년대비 겨우 6% 성장하는데 그쳤다(그림1). 더욱이 같은 기간동안 늘어난 유선통신 가입자는 13만3700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50만명)대비 76%나 줄어들었으며 또 94년부터 4년 동안 연평균 38만3000명씩 증가했던 것과 비교해도 60% 이상 감소한 실적이다. 유선 부문의 퇴조를 불러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악성채무와 가입자 이동을 들 수 있다. 많은 지역 전화 사업자(LEC)들이 요금을 연체하는 불량 가입자들을 해지했다. 이러한 자구 노력을 통해, LEC업체들은 1998년에만 사업자 별로 평균 9만5000명에게 서비스를 중단했다.
둘째는 셀룰러와 차별화되지 않은 초기 요금이다. 유선전화가 셀룰러에 비해 초기 도입 비용이 가정용은 67%, 사업용은 80%에 그친다 하더라도 이동전화 요금이 유선에 비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또 이동전화의 장점인 이동성을 고려해 볼 때 더욱 그렇다.
통신분야 전문 시장 조사회사인 미국의 피라미드리서치(http://www.pyr.com)는 필리핀 통신 산업이 올해 크게 성장하는 것은 물론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 동안 연평균 7% 성장해 2004년 연말에는 총 56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 회복과 함께 유선전화의 요금선납제도 도입, 유선·이동전화 통합서비스(필텔이 지난해 이 서비스를 선보이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전체 통신 가입자의 20%가 이용하고 있다)의 도입 등이 빠른 성장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피라미드리서치는 또 지역 요금 계산 제도(LMS)의 도입도 앞으로 유선 가입자수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무선사업 기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이동전화 가입자는 1998년 현재 38%가 성장한 170만명이 되었다(그림2).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글로브, 스마트와 같은 사업자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가입자 확보를 위한 도구로, 요금 미납 및 사기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한 선납제의 적절한 활용에 힘입은 바 크다. 또 이러한 성장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초기 가입비 측면에서 이동전화가 유선전화보다 비교적 저렴해 유선에서 이동전화로의 가입자 이동이 발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피라미드리서치는 필리핀의 이동전화 시장은 1999∼2004년 기간에 연평균 17% 성장한 750만명의 가입자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2000년에는 유선 가입자를 앞지를 것이다. 이러한 이동전화 서비스의 성장은 선납제의 성장 덕분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선납제 가입자가 이전의 가입자 수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성장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필리핀의 국가통신위원회(NTC)는 2000년 PCS 방식의 1개의 PMTS 신규 라이선스를 발급할 예정이다.
◇사업자의 경쟁사 인수 전략:스마트, 글로브 양사 모두 소비 패턴별로 다양한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입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단말기 보조금(75∼100달러)도 지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스마트는 요금 후납 고객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선납 고객들에게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호출기 사용자의 이동전화로의 이동:호출 서비스는 이미 많은 사용자들에게 매력을 상실했다. 데이터 서비스와 무료 수신전화 요금 서비스는 호출서비스 사용자와 달리 이동전화 사용을 증가시켰다.
◇유무선 서비스의 통합:피라미드리서치는 유선 전화의 성장은 LEC의 이러한 통합 서비스의 전면도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또한 복합 서비스로 인해 피라미드사는 이동전화 가입도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전략은 사용자들이 하나의 전화로 유무선 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이다.
△단말기 제조업체의 기회
통신부문 지출은 유선 수요의 감소와 고가의 기기 비용 등으로 인해 1998년 37%가 감소한 4억8900만 달러(그림3)를 기록했다. 그러나 피라미드리서치는 1999∼2004년 기간동안 연평균 3%가 성장한 7억3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바얀텔, 디지텔, PLDT 등이 잇달아 의욕적인 네트워크 확장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또 다른 지역 사업자들도 이동통신서비스 등의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1998년 무선 부문지출은 전년대비 3%가 성장한 4억9000만 달러였다(그림4). 그러나 인프라 부문은 19%가 줄어든 2억1800만 달러였고 이동 단말기 부문의 지출은 31%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리서치는 필리핀의 무선 인프라 지출이 2004년 연평균 4%의 성장을 계속하여 5억6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 요인으로 ◇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확장 ◇PMTS 인가에 따른 신규 사업자 등장 ◇필텔의 CDMA 네트워크 확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필리핀의 대형 무선 사업자인 글로브, 스마트가 GSM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무선 인프라 지출의 대부분은 GSM 플랫폼 구축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통신업계 주요 쟁점
필리핀의 통신 시장에 많은 사업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부문의 경쟁은 제한적이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PLDT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2004년까지는 현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지역계획이 실질적인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
셋째, 통합이다. PLDT와 스마트 산하로 흡수된 필텔의 운영 및 이슬라콤과 글로브의 합병과 더불어, 1995년에 시작한 자유화 일정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PLDT가 접속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피라미드리서치는 가까운 장래에 필리핀의 통신 시장 환경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PLDT의 지위는 자사의 통제를 받는 필텔의 유선 네트워크와 스마트의 통합으로 인해 그 지위가 한층 공고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통합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PLDT에 도전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대형 회사들의 공동 노력을 통해 경쟁환경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1993년에 마련된 「행정명령」 59항은 국제 접속과 필리핀 전국 통신망 통합을 위해 인가 받은 사업자들의 상호 접속을 강제하고 있다.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성은 의문이다. 먼저 이 명령은 특정 기간동안 상호접속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만 NTC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NTC가 실제로 명령 이행을 집행할 수 있는 범위와 권한도 모호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NTC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 상원에서는 NTC에 대해 필요한 권한 부여는 찬성하지만 한편으로는 추가적인 권한으로 인해 그 힘이 너무 막강해 지는 것을 내심 경계하고 있다. 현재 검토중인 법안은 NTC가 상호 접속에 대한 기술 기준을 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상호 접속요금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 네트워크접속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정리=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