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실리콘밸리CEO모시기<상>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값나가는 게 뭘까. 물론 하이테크 신상품이나 고가의 빌딩도 아니다. 사람이다. 그것도 회사 경영을 이끄는 하이테크 최고경영자(CEO)다. 이들 몸값은 천정부지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주택가격이나 휘발유 값보다 이들은 희귀하고, 따라서 이들 몸값도 더 빨리 오르고 있다. 그래도 신생 창업기업들에는 이들 모시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운 처지다.

누구보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지역 헤드헌터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최고경영자와 중역들을 골라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고 그 대가로 거액을 챙기고 있다.

이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절정의 호황이 아닐 수 없다. 애서턴에서 헤드헌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멜 코넷씨는 『최고 수준의 경영진들이 씨가 말라버리는 통에 하이테크 업체들이 자신의 CEO를 모시는 데 지불해야 하는 몸값이 지난 6개월 동안 하늘 모르게 치솟은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내 500대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샌프란시스코로 직장을 옮기는 대가로 38세의 한 경영진에게 제시된 스카우트의 조건을 보면 그 실상이 단숨에 드러난다. 코넷씨가 밝힌 이 사람에게 제시된 조건은 60만달러의 기본 연봉, 50만달러의 연간 상여금, 25만달러의 계약금, 회사 주식의 7%에 대한 스톡옵션, 직장을 옮기게 됨으로써 잃게 된 최고 62만5000달러의 스톡옵션에 대한 보상, 100만달러의 주택자금 대출, 그리고 가족을 데려올 때까지 2주에 한번씩 집에 가는 비행기 요금 등이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지난 22년간 약 150명의 CEO를 소개한 샌프란시스코의 헤드헌터 존 홀먼씨는 2∼3년 전만 해도 CEO를 구할 경우 회사 상장 뒤 2∼3%의 지분을 보장해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꼽는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2배 이상은 줘야 한다. 이처럼 오른 것은 봉급뿐만 아니다. 거의 모든 복리후생 조건도 상향 조정됐다. 그도 『일류 하이테크 회사의 고위직 후보로 오를 자격만 갖춘다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부러워했다.

멘로파크의 또 다른 헤드헌터 발레리 프레드릭슨씨는 유능하다고 소문만 나면 헤드헌터로부터 1주일에 50통 정도의 전화를 받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오클랜드에 있는 베르사타사의 잭 휴이트 CEO(56)는 인터넷 창업기업에 합류하는 기쁨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고충을 둘 다 잘 이해하는 경영인이다. 2주 전 상장된 베르사타사의 주가는 상장가 24달러에서 92.75달러까지 올랐다가 64.75달러로 마감됐다. 5년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이 회사에 합류해 외부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난 97년 CEO에 오른 휴이트는 150만주를 가지고 있다. 시가로 약 1억달러의 이익을 챙긴 셈이다. 이에 견주면 그가 1년에 받는 18만달러의 봉급과 11만달러의 상여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 차관을 지낸 휴이트 CEO는 『요즈음 CEO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2류는 구할 수 있지만 일류는 정말 구하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베르사타는 최근 3명의 관리책임자를 채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 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구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그는 『30∼40명의 후보자들과 면담을 했는데 겨우 2명만 채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30일 전직 투자은행가로 EQE 인터내셔널 앤드 매케슨사의 CFO로 근무했던 케빈 퍼렐씨를 스카우트했다. 퍼렐에게 보상으로 약속된 현금 부분은 적은 편이었지만 대신 스톡옵션으로 베르사타의 주식 45만주와 추가로 주당 5.56달러에 10만주를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이 정도의 스톡옵션이면 베르사타의 현 주가를 기준으로 3000만달러 이상은 된다.

실리콘밸리의 헤드헌터인 데이비드 포웰씨는 이 지역에서만 약 200명의 CEO 수요가 있으며 CFO나 판매 담당 부사장,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 등의 요직에도 빈자리가 수천개는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닷컴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앞서 시장에 진출하려고 할 경우 제대로 된 경영진을 구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포웰씨는 『실리콘밸리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경영진을 꼽을 수 있다』며 『이 문제가 최근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콘·페리 인터내셔널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세계의 중역들에 대한 수요가 지난해 1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에 대한 수요가 처음으로 수위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4·4분기 중 닷컴과 통신 등 각종 정보통신 업체에 의한 고용이 전체의 27%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금융서비스의 13%, 건강관리 및 의약 분야의 12%에 견줘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CEO에 대한 수요는 98년 전체의 13%에서 지난해 4·4분기에는 16%로 치솟았다. 새너제이에 있는 칼리코 커머스사 앨런 노먼 CEO(40)도 올해 인터넷 창업기업에 새로 뛰어든 경영인 중 한사람이다. 카덴스 디자인 시스템스사와 휴렛패커드사에서 15년 동안 여러 자리를 거친 노먼 CEO는 칼리코에서 받게 될 21만2148달러의 봉급과 상여금이 당시 카덴스사에서 받던 급여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 97년 카덴스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로 인해 스톡옵션이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노먼은 당시 칼리코로부터 24만달러의 대출을 받아 주당 20센트에 120만주를 샀다. 그는 지난해 9월 상장된 칼리코사의 주식 150만주(4.5%)를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가치로 5000만달러에 달한다.

그는 그러나 『이 같은 막대한 보상만이 이직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는 아니었다』며 『여러 차례 헤드헌터들의 집요한 구애를 받았던 자신은 3년 전에야 칩 디자인에서 인터넷 세상으로 뛰어들 관심이 일었다』고 밝혔다. 그는 『소용돌이 한 복판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