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초과학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고 뿌리가 깊은 나무는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

훈민정음 서두에 나오는 말로 튼튼한 기초가 모든 일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속담도 매사를 꼼꼼히 따져본 후 추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등 부실한 기초위에 지은 사상누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겪어봤던 우리들이 평생교훈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귀감으로 삼아도 좋은 글귀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이러한 교훈과 동떨어진 「빨리 빨리」 문화다. 열이면 아홉이 식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줌마, 빨리 주세요.』, 택시를 타자마자 『아저씨, 빨리 갑시다』라고 외칠 정도로 입에 배어 있는 말이 빨리 빨리다.

물론 이러한 빨리 빨리 문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빨리 빨리와 우리 민족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꼼꼼함이 매칭되면 금상첨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꼼꼼함은 사라지고 빨리 빨리만 남았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도 결국은 꼼꼼함이라는 기초가 빠지고 빨리 빨리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빚어진 사고다.

비단 이는 건설현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학기술부문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기초부문에 투입되는 금액은 쥐꼬리만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미래 유망산업으로 선진 각국이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생명공학연구만 해도 그렇다.

과학기술부는 물론이고 환경부·교육부 등 7개 부처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우리 정부의 전략 육성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를 외면하는 것은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최근 생명공학연구소가 발표한 「생명공학 벤처기업 창업 활성화 방안 연구」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더욱 자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98년부터 현재까지 총 1133억원(과기부 585억원, 농림부 303억원, 교육부 245억원 등)을 생명공학연구에 투입한 정부 7개 부처가 기초연구비로 배정한 것은 19.4%인 217억원에 불과하다. 누누이 기초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투자에는 인색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R&D 투자비가 선진국보다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보건의료분야 연구비 108억달러 가운데 70%를 기초연구에 투입하고, 유럽 연합도 생명공학 예산의 35%를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의 R&D 투자금액이 응용제품 관련 연구에 집중되고, 기초연구비가 순수 기초연구보다는 목적 기초연구에 투입되는 것은 과시욕이 크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는 기초연구보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낼 수 있는 응용제품 연구에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래가지고는 국가 과학기술기반의 존립기반마저 위태롭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기부가 2000년도 기초과학연구비로 지난해보다 7.4% 증액된 1696억원을 배정한 것이다.

창조적 기초연구역량을 축적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시키기 위해 지난 78년부터 추진된 기초연구사업비는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초과학연구개발을 통해 최근 2년간 배출된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1만6034명에 이르며 특허출원 1199건, 기술이전 1216건, 연구성과 상품화 705건이라는 옹골찬 성과를 거뒀다. 또 대학의 우수연구집단을 기초과학의 선도그룹으로 육성하고 소규모 기초연구 우수그룹을 양성할 수 있었던 기초과학연구비라는 자양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모든 길은 기초」로 통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정보통신은 물론이고 21세기 유망산업인 생명과학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의학 및 생물학이라는 기초가 한몫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물론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관·민이 힘을 합쳐야 하며 특히 정부가 기초연구분야에 대한 투자재원을 대폭 확대, 탄탄한 연구기반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