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학기술투자 약속

지금 일본에선 17조엔이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투입된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산업계는 산업계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집중적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산업계는 과거 5년간의 연구개발투자 방향이 성과없는 대학에 집중돼 일본경제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대학은 첨단 산업기술이 더이상 기초과학의 지원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만큼 대학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렸어야 했다는 이유에서다.

과학기술혁신기본계획에 따라 당초 약속대로 지난 5년간 모두 17조엔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직하게 쏟아부은 일본 정부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7차 과학기술 중기발전계획을 다듬고 있는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는 물론이고 일본 과기청 당국자들도 향후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중이다.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놓고도 정치권의 편의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줄어드는 과학기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우리정부와는 딴판이다.

과학기술투자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은 선거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가장 손쉽게 국민들을 상대로 내거는 공약중의 하나다.

그래서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판에서도 과학기술육성과 관련된 공약을 내거는 것은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안으로 통한다.

과학기술은 정치개혁이나 세금감면같은 뜬구름 잡는 공약보다는 보다 국민들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판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누구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후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대결보다는 상대방을 헐뜯고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우리의 선거판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 대덕연구단지를 지역구로 하고 있는 선거전에서 각 당이 내걸고 있는 선거공약을 보면 뜬구름 잡기식의 과학기술관련 공약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표모으기에 급급한 각 당이 원로급 과학기술자들을 입당시켜 전국구 후보 등의 배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한 치의 오차없이 계획한 예산을 투입하는 일본의 사례는 단지 선진국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도쿄=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