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인터넷부장
지난달 말은 국내 인터넷 벤처업체들에 홍역기였다. 새롬기술·골드뱅크·다음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당수의 인터넷업체들이 주주들의 따가운 심판을 받았다. 공개기업으로 당연히 치러야 할 통관의례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의 시험이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단상에 올라선 CEO들은 『주가하락의 대책은 뭐냐』 『합병의 시너지는 뭐냐』 『사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등 소액주주들의 수위 높은 발언으로 한결같이 곤욕을 치렀다.
그동안 고공장세의 주가 덕분에 어려움을 몰랐던 이들 업체의 CEO도 이날만큼은 「현실경영의 벽」을 느꼈을 것이다. 또 이날만큼은 그들이 내세웠던 「인터넷의 미래가치」보다 당장 주주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해 회의를 빨리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박한 과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웃자란」 주가 때문에 커다란 부담을 가져온 인터넷 CEO들에게 현실경영을 몸소 체험케 해준 이번 홍역이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세인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주총장은 역시 「경영권 분쟁」까지 겹친 골드뱅크였다. 골드뱅크는 잘 알려진대로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황당한(?) 마케팅기법으로 우리나라 온라인사업의 새 지평을 연 1세대 인터넷기업이다. 골드뱅크의 주총 결과를 주목한 것은 이같은 상징적인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업체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골드뱅크 사태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CEO의 잘못된 판단으로 야기된 경영상의 실수는 CEO가 책임져야 한다』는 유신종 현 공동대표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미 골드뱅크는 마케팅전략이라는 명분아래 농구단 인수, 금융권 인수 등 재벌흉내를 내면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와 인터넷업계 일각에서조차 벤처정신을 실종했다는 지탄을 받아온 터였다.
이에 반해 김진호 사장은 『이런 식으로 내가 밀려날 경우 다음 세대의 CEO들은 사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보다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확보에 더 열을 올릴 것』이라는 항변을 했다.
둘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맞는 얘기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이번 골드뱅크 사태를 단순한 경영권 분쟁이라는 시각에서 처리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간단치만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앞으로 인터넷업계의 대세로 자리잡을 M&A의 일단을 온몸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M&A 바람의 막후엔 재벌이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국내 인터넷업계엔 마땅한 비즈니스모델의 부재와 펀딩자금 고갈 등의 이중고를 겪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6월 위기설」이나 「9월 재편설」의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옥석이 가려지는 시기에 유무상증자의 편법만으로 주가를 떠받치기는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윈윈이 가능한 형태의 합병이 유일한 탈출구로 모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너지가 없는 동종업체간 단순 M&A는 시장정화기능만 떨어뜨릴 부작용도 있다. 고객공유도 아닌 단순 몸집 불리기식의 합병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당연히 퇴출당해야 할 업체가 합병으로 인해 살아남는 결과는 부실한 업체의 오너만 배부를 수 있는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아예 벤처사냥에 나선 재벌들이 나서는 것이 낫다. 새로운 시장창출 측면에서도 그렇고 파운더(설립자)와 경영자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도 적지 않다. 이번 골드뱅크 사태를 놓고 배후로 지목된 J그룹 L씨측에 미련이 남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어차피 재벌 입장에서 보면 골드뱅크 같은 인터넷기업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인수하는 것이 시간적 비용적 측면을 고려할 때 무조건 이익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J그룹측은 여론만 저울질할 뿐(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딱 부러진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골드뱅크 사태는 공동대표라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봉합 수준으로 끝나버렸다.
현재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인터넷기업들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표류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앞서 밝혔듯이 사업모델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웃자란 기업덩치 탓이 크지만 사업 아이디어를 낸 파운더가 끝까지 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우리 정서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야후만 봐도 이제 제리 양은 상징적인 나팔수 노릇만 하지 실제 경영은 CEO인 팀 쿠글이 다한다.
우리나라에서 회사를 차리고 또다시 다른 아이디어를 내면 욕먹는 정서와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사람의 재능은 한계가 있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이를 사업화해 키우는 사람은 다르다는 얘기다.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마땅하다.
골드뱅크 사태의 결론은 그래서 아쉬움이 큰지 모르겠다. 굳이 한차례 회오리를 몰고 지나간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인터넷업계의 토양도 이제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CEO 정서는 물론 인터넷업체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