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동체 형성과 정보화 문제의 선결과제-진용옥 경희대 정보통신대학원장
우리의 통일은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아니라 합의적 통일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이든간에 분단 이전의 동질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필요하며 그때는 이미 정보화시대가 만개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은 구시대적 기준에 얽매여 서로간의 갈등을 지속하기보다는 정보화 마인드에서 서로가 일치하는 요소를 찾아내 정보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민족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분단 반세기 동안 형성된 자기중심적 질서를 상대편에 강요한다는 것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여 수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화의 물결 같은 새로운 질서에서는 보다 손쉽게 동질성을 모색할 수가 있으며 실천에 따른 장벽도 비교적 낮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남한은 정보화에 대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북한은 정보화의 초보적 단계에서 이러한 지식과 경험이 공유된다면 북한에서의 시행착오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전민족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이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남북 어디에서도 이러한 논리는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남은 우월한 위치에서 남북의 공동기준에 입각한 새로운 정보화 질서를 오히려 혼란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북에서는 남쪽이 서두르지 아니하는데 먼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사이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10일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금년 6월 평양에서 개최하리라는 발표를 했다. 또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번에는 필연코 열릴 것이며 또 열려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통일에 관한 한 맹목적인 환상에 젖어있었다. 일종의 강박관념과 어떤 도그마적 포로상태를 지속해 온 것이다. 지나치게 대립적 사고에 젖어 통일이 그 목표인양 행동해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남북이 만났다 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댔던 것이다. 아니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통일은 멀어진다는 것이다. 통일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되기보다는 세계화 관점에서 볼 때 다국적 여러 국가의 한민족이 하나의 정보화 방식에 의하여 민족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하나의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통일은 그 과정에 포함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이 목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통일은 남북의 관계라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범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해야 하며 남북문제에서 다국적 민족문화 공동체 중 하나의 문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남북의 문제를 세계화 문제로 승화시켜 좀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 비근한 예로 한글로 된 인터넷 메시지가 남북에서 통용되려면, 그리고 미국의 동포가 소프트 워드를 즐겨 이용한다면 인터넷시대의 전자우편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이러고서 우리가 단일민족이며 통일이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인터넷 전송의 세계표준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북이 합의해야 하고 중국정부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소수민족의 표준에 조선어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요 최소한의 조치일 뿐 미국과 러시아, 일본의 한국인들도 서로 교신되는 인터넷 기반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문제는 당사자의 문제인 동시에 다국적 민족문화 공동체 형성의 큰 틀속의 한 작은 문제로 전환되는 큰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