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선 경제과학부장
21세기의 화두는 나노(Nano)다.
100만분의 1을 의미하는 마이크로 단위 제어기술로도 컴퓨터공학·유전공학·신소재공학 등을 화려하게 꽃피울수 있었던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에는 마이크로보다 1000분의 1만큼 더 작은 나노 제어기술이 아니면 모든 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나노기술 확보에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의 연금술」로 불리는 나노테크놀로지란 과연 무엇인가.
난쟁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된 나노는 말 그대로 「작다」는 의미다. 그러나 단위로 쓰일 때는 현대과학이 지금까지 다룰 수 없었던 초미세 세계를 일컫는다.
「센티미터(㎝)」의 센티는 「100분의 1」을, 나노미터(㎚)에서 나노는 「10억분의 1」을 의미한다. 1㎚는 원자 3∼4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크기이며, 원자를 10억배 확대하면 포도알 크기가 되고 야구공을 10억배 확대하면 지구 크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노의 세계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최첨단 현미경을 통해 겨우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원자나 분자를 마음대로 조작해 신물질을 만들거나 혈관 내부나 세포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초미세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나노테크놀로지」의 세계다.
따라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나노세계가 곧 원자세계라고 말한다. 원자 하나 하나를 기계적으로 적절히 결합시킴으로써 DNA 유전자 및 쇠고기 등 필요한 물질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이 나노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꿈같은 얘기지만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같은 나노의 세계를 과학기술의 범주로 끌어들인 사람은 195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이다.
「원자 설계도에 따라 원자를 하나씩 쌓아나가면서 조립하면 모든 물체와 장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이를 실현불가능한 몽상이라고 배척했었다. 그러나 분자공학이 등장하면서 그의 이론이 재평가되고 나노테크놀로지 연구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화두로 급부상한 나노테크놀로지에 거는 과학자들의 기대는 매우 크다.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해 나노테크놀로지의 개념을 정립한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는 『나노테크놀로지가 건강에서 식량 문제까지 인류의 모든 생활을 바꿀 것』이라고 확언할 정도다. 사실 나노테크놀로지가 실현되면 천연 다이아몬드는 물론이고 스스로 움직이면서 특정 질병에 걸린 세포를 인식할 수 있는 초소형 로봇도 개발할 수 있다.
가히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나노기술의 상용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카오스 이론의 실제적 응용, 형상 기억합금, 고온 초전도체, 레이저, 광컴퓨터, 게놈 프로젝트, 지능형 로봇과 함께 나노기술을 21세기에 실현될 과학기술로 손꼽지만 상용화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나노기술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것은 꼭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에 포함된 것은 물론이고 범정부 차원에서 나노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난 97년에는 기존 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초고밀도 정보기억수단을 개발한다는 목표아래 「나노기억매체연구단」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조만간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도 없는 나노테크놀로지가 지구촌의 생활패턴을 바꾸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국가 및 기업의 흥망성쇠도 나노기술이 좌우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관·산·학·연의 힘을 결집시켜 나노기술 확보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