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종이 백만장자 MOP

실리콘밸리는 첨단기술산업이나 온라인산업의 집약지로 전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64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었다. 인터넷에 대한 식지 않는 열기로 인터넷 신생회사가 나스닥에 상장하면 주가가 폭등해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같은 상황은 현재 반전됐다. 미국의 세계적인 조사기관과 유명언론들이 인터넷 거품론을 연일 지적하면서 세계적인 갑부들이 움켜쥔 이른바 첨단기술 닷컴 주식이 최근 대폭락했기 때문이다. 반토막난 주식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반의 반토막 아니 10분의 1로 토막난 주식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서류상의 백만장자(MOP:Millionaire On Pap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종이 백만장자였다는 뜻이다. 이 MOP란 단어는 미국 동부의 뉴욕언론들이 실리콘밸리의 젊은 닷컴 백만장자들을 빗댄 것이다. 팔지도 못하는 주식을 가지고 서류상 백만장자 대열에 올랐으나 주가폭락이 일어나자 종이 백만장자에 불과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동부지역은 서부지역에 비해 오프라인산업이 강하다. 서부의 온라인산업이 최근 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매우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인터넷 거품론은 그간 등한시돼 온 오프라인이 투자자들로부터 다시 주목을 받게 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 것도 물론이다.

미국 첨단기술 주가의 폭락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른바 블랙먼데이라는 표제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우리의 닷컴 업체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대표적인 몇몇 벤처기업가들도 백만장자 대열에서 벗어나 재산이 거의 한달새에 반토막 나버렸다. 온라인분야는 외면받았으나 오프라인분야가 주목받은 것도 미국과 비슷하다.

우리의 젊은 벤처기업가, 닷컴기업가들은 최근의 투자분위기 반전에 무척이나 우울하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펀딩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 누구와 손잡을지 고민했었으나 지금은 외부투자자를 유치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되면 광고 수입 이외에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는 우리의 인터넷비즈니스 현실에 비춰 볼 때 자본을 어느 정도 유치한 인터넷회사들은 당분간 먹고 살 걱정이 없으나 신생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살림을 꾸려가는데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래서야 유망 벤처기업들이 성장하는 토양 즉 인프라가 만들어지길 기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투자자들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투자자들의 최대목적은 수익확보에 있다.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기업에 투자할 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성장성이 있고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에는 적극적인 투자가 요청된다. 묻지마 투자를 지양하고 옥석을 가려서 투자하라는 말이다. 현재가치는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할 인터넷 기업들을 가려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투자자들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투자에 나선다면 국가경제의 미래는 인터넷비즈니스에 달려있는 만큼 국가경쟁력도 강해질 것이고 나아가 투자에 대한 수익도 확실히 담보해낼 수 있다. 인터넷비즈니스는 거품이 아니고 실체다. 신경제의 큰 흐름을 인터넷이 차지하고 있으며 인터넷은 역사의 큰 줄기이기도 하다.

인터넷비즈니스에 종사하는 기업가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겸허히 받아들이길 당부한다. 대다수의 인터넷 기업들은 그간 투자자들의 패턴변화 조짐을 읽지 못했다. 지난해가 인터넷 창업시대였다면 올해 들어서는 가치평가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같은 변화를 읽었다면 수익모델 창출 내지는 생존을 위한 인수합병 또는 신기술개발 등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었다. 그러나 일부 유명 인터넷기업들은 현재가치를 높이기보다는 경영권 다툼 내지는 돈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인터넷비즈니스는 이제 옥석을 가려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묻지마 투자도 사라졌다. 잘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만 존재한다. 껍데기만 닷컴인 기업은 인수합병되거나 빨리 사라지는 것이 인터넷산업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사업시작 초기의 벤처정신을 다시 한번 되살려야 한다. 벤처는 기술로 상징된다. 기술력 만이 벤처기업을 살릴 수 있고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온 열정을 쏟는다면 펀딩은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꿈만 먹고 사는 종이 백만장자가 아닌 현실세계에서의 진짜 백만장자가 우리의 닷컴 기업에서 많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