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한상기 벤처포트 대표 stevehan@ventureport.co.kr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자(Chief Software Architect)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미 행정부에 대한 모종의 제스처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연구그룹뿐만 아니라 업계의 모든 신기술을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사용자들이 개인적인 디바이스나 웹에 있는 정보를 손쉽게 접근·관리·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3개년에 걸쳐서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엇이 그를 이런 생각에 이르게 하였을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윈도로 대변되는 PC 환경이 탄생 이래 지금까지 커다란 혁신 없이 개선되어 왔을 뿐이며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윈도라는 것도 결국 제록스의 알토와 매킨토시의 성공을 따라온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또 다른 거물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빌 조이는 PC는 과거 15년 동안 아무런 혁신이 없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가 위기 의식을 느낀 또 하나의 원인은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복귀와 그의 성공작인 「i맥」, 그리고 최근에 발표한 「맥OS X」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PC 환경의 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매킨토시에서 시작하여 PC로 이식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2월 맥월드에서 발표된 사용자인터페이스 「아쿠아」의 다양한 기능은 PC용 운용체계(OS)를 또 다시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 동안 PC를 사용하면서 불합리하다고 느낀 점, 좀 더 편리할 수 없을까 하고 답답했던 점을 스티브 잡스는 『OS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이렇게 돼야 하는 것이야』하고 그 해답을 보여 주었다.

인터넷 뉴스 레드헤링은 최근호에서 빌 게이츠가 지난 10년 동안 스티브 잡스의 혁신을 흉내내 왔는데(물론 시장에서의 우위는 여전히 빌 게이츠의 몫이지만) 앞으로 그 추격전이 다시 벌어지게 됐다고 흥미로워하고 있다.

필자가 「맥OS X」 데모를 접했을 때, 17년전 매킨토시의 전신 「리자」를 보았을 때의 전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사용자를 위한 소프트웨어란 이런 거구나 하는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빌 게이츠 노선을 따르는 벤처 기업만 있다.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을 이루겠다는 기업가를 만나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필자가 만나본 벤처 기업인에게 보다 도전적인 과제와 기술을 제안하면 대부분 『그건 너무 어려워요』 『그러지 않아도 투자 받고, 코스닥 등록이 가능한데 왜 그런 어려운 모험을 합니까』 라는 대답뿐이었다.

OS의 경우 우리는 더 이상 도전하기를 포기한 나라다. 물론 윈도와 경쟁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개선해야 하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소위 벤처 1세대라고 했던 초기 벤처기업은 무모할 만큼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겠다」 「우리 글꼴은 우리가 만들겠다」 「가장 경쟁력 있는 초음파 의료기를 만들겠다」 등등. 물론 그중에 성공한 기업과 사라진 기업도 있지만 그 도전 정신은 위대했다.

지금은 그 역할을 누가 하는 것일까. 필자는 벤처기업보다 오히려 대기업의 엔지니어들이 하고 있다고 본다. 대기업의 과제는 필연적으로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에 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들은 모방과 응용, 해외 제품 도입, 경품을 통한 회원 모으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과거 대기업이 하던 방식을 벤처라는 간판을 달고 수행하면서 코스닥에 등록하고, 투자를 받고 하는 식이다. 현재는 대기업의 연구진들이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 벤처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지금도 세계 시장 제패를 꿈꾸며 젊음을 바치는 기술 벤처들이 있겠으나 너무 소수인 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언론도 이들보다는 몇 가지 아이디어로 화려하게 등장한 사람들을 더 쫓아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무모함이 보이더라도 차세대 기술,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는 혁신적인 기업을 만나고 싶은 것은 투자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한 기술진을 끌어가는 혁신적인 기업인,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