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래 산업예측과 정보가전 육성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앞날을 내다보고 그에 따른 실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80년대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가장 널리 쓰이는 주변장치가 CD롬 드라이브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시기적으로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모두 적중했다. 또 90년대 초엔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정보를(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이라는 표현으로 양방향 네트워크가 컴퓨터와 정보가전으로 온갖 정보를 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트워크 형태만 달랐지 95년부터 인터넷이 등장해 엄청난 네티즌을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도 PC 가격이 100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고 인터넷이 개인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하는 「퍼스널 웹」 시대의 도래 등 IT 산업 변화에 대해 수 많은 예측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예상이 대부분 적중하고 있다.

IT 분야 전문가가 IT 분야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원래 전문가란 한 분야의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 만큼 해당 분야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전문가의 미래 예측은 모두 다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주변 변수에 따라 미래 예측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의 예측이 우연히 맞아 떨어진다면 예지(叡智)가 빛날 것이고 맞지 않는다 해도 흉잡힐 일은 아니다.

요즘처럼 세상이 급변하는 시대에선 미래 예측이 범람하기 마련이다. 물론 모든 예측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예측을 단순한 호기심이나 궁금증 해소 차원으로 보아선 안 된다. 지난해 말 일본의 경영전문지 닛케이 비즈니스가 예측, 발표한 「21세기 초 세계의 주목을 끌 신기술」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이 신기술 예측 기사에서 21세기 초 정보가전의 등장으로 가정에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자유로이 편집해 다시 인터넷 등을 통해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부엌의 냉장고는 식품재고를 점검해 야채나 과일이 부족하면 슈퍼마켓에 자동으로 주문 신청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 최근호도 「포스트PC 시대를 주도할 디지털 정보기술」이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머지않아 거실의 세트톱박스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영화를 내려받아 벽걸이형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아시아위크는 특히 이 기사에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컴퓨터의 개념과 완전히 다른 디지털 기기들이 등장, 주방·거실 등 집안은 물론 생활주변에 속속 파고들어 인간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했다. 너무 성급한 추정이 아닌가 할 정도로 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상상하는 거의 모든 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미 도달해 있다고도 보도하고 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이 같은 미래 예측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앞으로 유망한 산업은 디지털 가전 또는 정보 가전이라 불리는 디지털 정보기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빌게이츠의 예측처럼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자는 의도가 강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에 고정되지 말고 불확실하더라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하라고 권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정보가전제품은 본격적인 시장 형성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수요를 만들어 가는 특징을 가진 기술주도형 제품이다. 때문에 어떤 제품이 널리 활용되고 어떤 것이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정보가전제품 개발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유연함이 필요하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등 양대 정부 부처가 디지털가전 또는 정보가전산업 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처간 헤게모니 싸움은 차치하고라도 단순히 이런 게 유망하니까 민·관 공동투자로 이런 제품을 전략적으로 개발해보자는 식으로 정책들이 만들어져 발표되고 있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이 정보통신 기술력에 좌우되고 이에 대비한 선진국들의 기술 경쟁이 치열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정책설정은 일면 옳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전이 아이디어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 있는 지식경제 시대 산업인 데도 산업화 시대에나 필요했던 관주도형 산업 육성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본에서 최근 이전처럼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 방식으로는 새로운 기술혁신 분야에서 더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반성이 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정보가전 산업 발전은 정부가 연구개발 기반을 마련해주고 해당업체의 개발 유연성이 전제될 때 빛을 발하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