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정보통신(IT) 관련 투자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다. 상당 규모의 추가투자를 앞둔 은행들이 IT투자의 효율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인터넷산업을 중심으로 한 중요 산업 경쟁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금융결제원이 최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일반 은행들이 지난해 IT부문에 쏟아부은 자금이 2000억원을 넘었으며 이 가운데 90%가 시스템 구축에 투자됐다고 한다. 그러나 금결원은 이같은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IT분야 수준이 단순 대금결제 등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투자에 비해 생산성 향상이 높지 않아 투자 자체가 부담이 되고 있는 상태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 이들 은행이 해야 할 수천억원대 추가투자의 효율성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점검과 방향설정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은행들의 IT투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IMF로 몰아닥친 금융권 구조조정 이후 자생력 확보를 위한 것이며 또 하나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금융환경 변화에 순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은행들이 중점 추진해온 것은 자생력 확보를 위한 투자였다. 따라서 은행간의 경쟁적인 시스템 도입이 이뤄진 반면 은행들을 묶을 수 있는 시스템간의 호환성 확보나 이를 바탕으로 한 협력 등은 뒷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은행권이라는 큰 그림에서 이뤄지는 IT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2차 금융권 구조조정은 생존에 급급한 은행들로 하여금 기존의 투자방식을 고수하도록 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들이 인터넷시대라는 환경변화에 투자를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분야 투자는 자생력 확보 차원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국내 산업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흐름을 쥐고 있는 은행이 산업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국내 산업체들이 대외경쟁력 면에서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앞으로 은행들의 IT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보탬이 되는 금융환경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투자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은행의 경쟁적인 시스템 도입에 따른 중복투자를 막고 금융권은 물론 산업분야로 이어지는 자금흐름의 효율화를 가능케 하는 길이 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은행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경쟁에 매달려 있는 은행들의 협력이 불가능하다면 정부당국이 충분한 검토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은행들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남아 있고 이 때문에 은행들의 IT투자가 포괄적이기보다 자체 경쟁력 확보에만 치중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IT투자에 관한 한 정부는 규제 중심의 금융산업 정책에서 탈피해 향후 은행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은행들이 투자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