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름다운 퇴진

6월 1일부로 윤문석 사장 체제로 바뀌는 한국오라클 인사가 정보기술(IT)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한국오라클의 인사는 전적으로 한국오라클과 강병제 사장의 의지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상적으로 외국계 IT업체의 경우 지사장의 인사는 전적으로 본사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 후임 사장을 내정하는 것도 일부 협의나 의견개진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지사에서 가질 수 있는 권한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일방적으로 지사장 해임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어 본사의 전횡이 지나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오라클은 강병제 사장의 구상대로 3여년전부터 후계자를 윤 신임사장으로 지목한 이후 최근에 경영권을 넘기기까지 순수하게 독자적인 힘으로 지사장 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오라클 본사에는 이 사실을 통보하고 허락을 얻어내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을 뿐 모든 것은 한국오라클 내부에서 진행됐다.

물론 이번 인사는 강 사장의 구상이 오라클 본사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독자적인 경영진 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던 저변에는 지난 10년 이상 한국오라클이 벌여왔던 사업의 성과와 강 사장의 공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강 사장은 89년말 한국오라클을 설립해 데이터베이스(DB) 산업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이뤄낸 장본인이다. 10년 이상 100회가 넘는 무료 IT세미나를 개최했으며 대학교를 대상으로 DB를 무료 기증하는 등 DB산업 발전에 남다른 공헌을 해왔다. DB분야의 독점기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라클이 국내 IT산업의 핵심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강 사장의 역할이 컸다.

강 사장은 본인의 말대로 새로운 회계연도를 앞두고 명예롭게 일선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내렸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어떻게든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부 경영자들의 안쓰러운 모습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컴퓨터산업부·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