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부는 인터넷열풍>상-폐쇄적 재벌구조 변화 감지

<본사 특약=iBiztoday.com> 아시아는 떠오르는 해다. 아시아 경제인의 행보도 이제 구 경제보다는 신 경제가 나아갈 방향이자 그 타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보다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와 시장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이른바 타이쿤(tycoon)으로 불리는 재벌들의 인터넷 러시는 아시아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다.

이들 재벌의 행보는 숨가쁘다. 홍콩을 기점으로 한 거대 중국과 대만, 한국, 일본 등의 재벌들은 너나없이 2, 3세대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들 재벌 2, 3세대를 주축으로 한 인터넷 사업 공략은 그야말로 불을 뿜듯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에서 부동산은 부와 힘의 상징이다. 레이먼드 곽 홍콩 재벌 2세(43)는 그런 면에서 왕족에 가까운 인물이다. 홍콩 대형빌딩 46층의 곽 회장 사무실 창밖으로 숲을 이룬 키다리 건물들 중 수십개 빌딩이 그의 가문에 의해 세워졌다. 홍콩 항구 건너편 쪽 주룽반도에 톱니처럼 들쭉날쭉 자리잡은 아파트촌 역시 곽 가문의 소유다. 곽 가문의 부동산 왕국은 그 규모 면에서 아시아 최대로 꼽힌다. 레이먼드 곽 회장과 그의 두 형제는 얕잡아볼 수 없는 홍콩달러의 기준으로도 엄청난 갑부다.

그러나 곽 회장은 요즘 들어 유리나 철근, 시멘트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는 『늘 미국을 주시해왔다』며 『미국에서 테크놀로지가 비즈니스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차세대 업종으로 낙점한 것은 물론 인터넷이었다. 곽 회장은 인터넷의 물결이 태평양 지역을 엄습하자 이 새로운 기술이 갑작스런 부와 함께 방향을 상실할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아시아 전역에 몰고올 것으로 직감했다. 곽 가문이 홍콩의 엘리트 상공인 사회에서 제자리를 지키려면 인터넷 혁명에 가담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하버드대학 MBA출신인 곽 회장은 아시아의 구 경제 기업들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야심만만한 인터넷 전략을 수립하면서 부동산 사업과 관련이 있는 스타트업(신생회사)들을 사들였다.

곽 가문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시아 재벌 가문들의 한 예에 불과하다. 대만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 해당 국가의 재벌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의 주력업종이 이동통신이건 금융이건 간에 상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인터넷이 영업 영역을 확장해 더욱 많은 부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인터넷은 동아시아의 기업경영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스피드와 개방성, 협력을 중시하는 인터넷은 신중성과 가족 지배라는 아시아 기업의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 가문의 어른이 비밀의 장막 뒤에서 행사하던 결정권은 실리콘밸리의 관리방식을 따라 점차 아래쪽으로 분산되고 있는 추세다.

모든 결정을 오너가 내리는 고전적인 아시아의 재벌 왕조가 인터넷 사업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인터넷 업체들 중에서 가장 먼저 공모주를 발행한 차이나(http://www.china.com)의 피터 입 사장은 『이들이 경이로운 속도로 새로운 사업에 적응해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토로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재벌 기업들의 인터넷분야 진출 결과에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카멜레온을 연상시키는 아시아 재벌들의 놀라운 적응력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彭@막?뛰어드는 데에는 숫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시각이다. 지난 25년간 재벌들은 거의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유지했다. 인도네시아나 태국, 말레이시아의 타이쿤들이 정부와의 유착으로 시장의 힘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왔던 것도 역시 사실이다.

홍콩의 신문 발행업자이자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주인 지미 라이 사장은 『인터넷이 앞으로 25년간 확대 재생산된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게 재벌들의 생각이지만 지난 25년간 몸에 밴 정경유착의 경영방식을 떨쳐내기 불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지미 라이 사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 지배의 아시아적 경영문화가 인터넷에 의해 잠식될 것으로 예측했다. 인터넷을 통한 광범위한 정보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접촉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쌓아올린 인맥과 연줄의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곽 회장은 자신의 일가가 첨단 기술의 새로운 물결을 무난히 타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열리는 기술 관련회의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고 첨단업종 경영자들과 빈번한 대화를 나누었다.

곽 회장은 이 같은 탐색과정을 통해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적합한 온라인 사업을 찾아냈다. 그 중 하나가 특별히 맞춘 사무실 공간을 가정용 컴퓨터 서버들에 제공하는 사업이었고, 또 하나는 곽 가문의 부동산 회사인 선흥카이 프라퍼티스가 소유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을 위해 대화방과 게시판을 포함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곽 회장은 그 동안 경영권을 확보해두었던 신생 인터넷 기업들을 한데 모아 서니비전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든 뒤 홍콩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는 이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서니비전의 실질적 운영을 담당할 전문경영인은 외부에서 영입했다.<브라이언리기자 brianlee@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