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21>
2000년을 눈앞에 두고 IMF를 겪었으나, 두 해가 지나면서 빠르게 복구되었다. 더구나 그 동안 여러 가지 여건으로 공장 자동화 설비를 미루어왔던 업체들이 한꺼번에 수주를 하는 바람에 국내 영업은 포화상태였다. 미처 제품을 대지 못하거나 설비를 하지 못한 거래처는 다음해로 미루는 일까지 발생했다.
IMF이전의 매출을 200% 웃도는 성장 추세를 보였다. 일손이 바빠서 직원들도 두 배로 늘어났다. 상당히 만족스런 한 해였지만 나로서는 풀지 못하는 숙제를 지니고 있는 학생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성취욕이 강한 탓도 있지만 실제 두 해 동안 해외 진출을 위해 매진을 했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중국 시장을 겨냥한 일이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 정부로부터 양자강 사업을 할 경우 함께 사업을 한다는 협의서를 교환한 정도인데, 이러한 협의서는 실제 일의 수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른 업체에도 같은 협의서를 교환할 수 있으니 구속력도 없는 것이다.
국내의 영업실적 향상과는 무관하게 표정이 굳어 있는 나를 간부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나의 회사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침 조회때 전 직원을 모아놓고 사장 훈시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직원이 많지 않았으나 사장이 직원 개개인을 만나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럴 경우 그 제도는 최고경영자의 생각을 그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최고경영자인 내 뜻이고, 직원들은 아침부터 지껄이는 사장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전통을 고집하고 있었다. 12월 첫째주 월요일 조회를 하면서 훈시를 하였다.
『한 해 동안 만족스런 영업실적을 올렸습니다. 아직 결산을 내보지는 않았으나 전해의 800% 성장에, IMF이전 최고의 성장실적에 비해 200%의 매출을 냈습니다.
그 점 여러 임직원에게 치하하는 바입니다. IMF가 터지고, 30여명의 직원들을 퇴출시키면서 나는 울었습니다. 다시는 IMF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러기 위해서 시야를 더 넓게 가져야 한다고 판단해서 두 해 동안 내가 전력을 기울인 것이 해외 진출입니다. 그래서 일본, 미국, 독일, 호주에 지사를 두게 되었고, 싱가포르에는 동남아를 총괄하는 지사를 세웠으며, 지난 여름에는 중국 북경에 지사를 두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기술이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지상명령 때문에 전력을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