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특약=iBiztoday.com) 대만의 제프리 쿠 주니어 회장(35·사진)은 다르다. 그가 직면했던 최대의 과제는 인터넷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는 점을 가문의 어른들에게 납득시키는 작업이었다.
제프리는 금융, 통신, 시멘트와 케이블TV 방송을 송두리째 장악한 대만의 재벌가문 쿠 가의 4대 손이다. 지난 1997년 와튼 스쿨 동창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쿠 회장은 가문의 미래가 인터넷에 달려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가문이 소유한 차이나 트러스트 커머셜 뱅크의 총재이기도 한 쿠 회장은 온라인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인터넷 서비스업체 설립에 1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그의 계획을 일언지하에 잘라버렸다.
쿠 회장은 『아버지와 삼촌들은 인터넷 사업을 도박쯤으로 여겼다』며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에 대해 아무리 열을 올려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고 떠올렸다.
이 같은 집안 어른들의 태도는 마이크로소프트(http://www.microsoft.com)가 쿠 회장이 설립한 광대역 오락정보서비스 신생기업 「기가미디어」(http://www.gigamedia.com) 지분의 10%를 사들이면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기가미디어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대만의 첫번째 인터넷 회사가 됐다. 기술주가의 동반 폭락에 걸려 주가가 무너지긴 했지만 아직도 기가미디어의 가치는 20억달러를 넘는다.
현재 쿠 회장은 자신의 일가가 전체 지분의 75%를 소유한 기가미디어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뱅킹과 지역 내 전자상거래서비스를 개발중이다. 2년 전 아들의 인터넷 사업에 제동을 걸었던 쿠 회장의 아버지도 요즈음은 사이버 세계를 화두로 삼을 정도로 인터넷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아시아 경제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낡아빠진 이야기의 새로운 장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국계 가문들은 예로부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번영을 일궈내는 기막힌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곽 가문의 최고 어른인 곽택성씨는 중국 남부지역의 무역상으로 출발했으나 1950년대 홍콩으로 건너와 일본 YKK 지퍼회사의 현지 에이전트로 변신했다.
그는 지퍼보다는 부동산쪽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홍콩의 손꼽히는 부동산 개발업자로 자리매김했다. 곽 회장은 지난 90년 사망했지만 그의 세 아들 중 선흥카이 회장은 유료 도로와 수화물 처리, 이동전화 등의 사업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면서 일약 재벌의 반열로 뛰어올랐다.
아시아의 재벌들은 탄탄한 지위를 누리고 있으나 거세지는 신규 인터넷 업체들의 도전에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문발행업자이자 자칭 이단자인 라이 회장은 자신을 좋은 본보기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인터넷 잡화점 애드마트를 개설했다. 애드마트는 중간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해당 창고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해 배달해주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지닐 수 있었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로 인해 2개의 현지 로컬 슈퍼마켓체인을 가진 당대의 「거상」 리 카싱 회장<사진>이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화가 치민 리 카싱 회장은 라이 회장의 핵심사업체인 일간신문 애플데일리지, 주간지 넥스트 매거진과의 광고 계약을 모조리 취소해 버렸다.
광고 수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라이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언론매체를 총동원해 홍콩 최고의 부호를 상대로 전면전에 돌입했다. 라이 회장은 『이전에는 리 카싱 회장과 같은 거물을 상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같은 거대한 시장의 힘을 등에 엎고 있으면 설사 리 카싱 회장이라 하더라도 나를 막아낼 수 없다』고 호언했다.
어떤 면에서 이제 인터넷은 아시아를 관통하고 있는 「제2의 혁명」이다. 지난 97년과 98년 아시아 지역을 휩쓴 금융위기로 족벌운영체제의 재벌들은 붕괴직전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홍콩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요즘에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아시아 각국의 정부들은 부실은행 정리에 나서는 한편 관련법을 정비,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했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재벌들은 기업재무 보고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며 소액 주주들은 무시해도 상관없는 거추장스런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구경제 시대의 기업경영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아의 재벌 기업들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아시아의 타이쿤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긴 했으나 금융위기도 이들의 사업가적 본능을 둔화시키지 못했다. 아마존(http://www.amazon.com)과 e베이(http://www.ebay.com) 등 신규 인터넷업체들의 눈부신 성공을 목격한 아시아의 재벌들은 앞다퉈 인터넷 계열사의 신설에 나섰다.
리 카싱 회장은 허치슨 훰포아와 층콩 홀딩스 등 2개의 체인점을 통해 전자상거래 사업을 발진시켰고 중국어판 포털인 톰(http://www.tom.com)에 투자했다. 지난 2월 홍콩 증시에 상장된 톰의 주식가격이 미국 증시의 기술주 폭락 영향으로 무너지자 주식 구입자들 사이에서 폭동이 발생할 뻔했다. 그러나 리 카싱이라는 휘황한 이름의 영향으로 톰은 아직도 최초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현지의 온라인 주식거래 회사 붐(http://www.boom.com)의 창업자인 마크 더프 사장은 『아시아의 재벌들이 신경제에서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고 유지한 점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며 이들의 놀라운 적응력에 혀를 찼다. 더프 사장은 그러면서도 재벌들이 아시아의 사이버 공간을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족벌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재벌들이 돈과 재능을 모두 독식하고 있고 이 때문에 훨씬 멋진 아이디어가 자금과 일손을 얻지 못해 사장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타이쿤들의 뒷받침을 받는 벤처기업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 예로 창고와 인터넷 사용자를 연결하는 서니비전의 아이디어는 미국의 엑소더스가 고안해 낸 것이었다. 톰은 스스로를 전세계 중국인 사용자들을 위한 메가 포털이라고 떠벌렸지만 상장 뒤 내용을 살펴보니 홈페이지와 몇 개의 링크가 고작이었다.
더프 사장은 『아시아 벤처기업들의 인터넷 사업 개념이나 구상은 얄팍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족벌들의 브랜드네임 인지도가 워낙 높아 이 정도의 결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디어가 형편 없으면서도 재벌들의 이름 덕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경영문화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가들도 없지 않다. 리 카싱의 아들 리처드 리 회장<사진>도 홍콩에 첨단산업공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른바 「사이버포트(Cyberport)」로 알려진 64에이커의 이 첨단산업단지는 마이크로소프트, IBM과 소프트뱅크와 같은 입주자들에게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33세에 불과한 리는 홍콩의 빼어난 인터넷 사업가 중 한 사람이자 사이버 공간으로 이주하려는 아시아인들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운 지 2년밖에 안된 그의 인터넷회사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는 최근 360억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전에서 승리, 홍콩 최대의 전화회사를 손에 넣었다. 현재 리 회장은 위성전송 인터넷 서비스 사업을 추진중이다.
리는 아시아판 인터넷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리 왕조」의 후손인 그는 스톡옵션으로 부를 거머쥐려는 재기 발랄한 젊은이들을 모아 활기 넘치는 사이버 시대의 기업을 만들어냈다. 그가 세운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의 홍콩 전화회사 인수는 아메리카온라인이 타임워너를 합병한 것에 견줄 만하다.
하지만 중국은행이 120억달러의 신디케이트 융자금을 대출해주지 않았다면 리가 홍콩 전화회사를 인수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리의 아버지가 구축해 놓은 연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같은 거액의 대출금을 융자받을 수 없었다는 게 업계 관측통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사이버포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이버포트는 홍콩에 풍요로운 테크놀로지 문화의 씨를 뿌리는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르지만 리 가문의 경쟁자들은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가 이 프로젝트를 따낸 것도 정부와 리 가문 사이의 밀실 거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비난한다.
요즘 들어 타이쿤들은 아시아의 봉건적 가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겸연쩍어 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 리 회장의 알렉스 아레나 비서실장은 『이곳에서는 서구적 요소와 아시아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국처럼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대신 어떻게 하면 미국에서 자란 앵두나무에서 과실을 따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리기자 brianlee@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