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연구개발 인력의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벤처기업인 미디어링크로 옮겨간 5명의 직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업금지 가처분 소송」이 원고인 삼성전자의 판정승(본지 9일자 12면)으로 판결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링크 측의 이의신청 의사가 확고한 만큼 아직 완전하게 승패가 갈린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촉발되고 있는 정보통신 인력이동에 대한 공방전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벤처기업은 『이번 판결은 사실상 경력직원 수혈을 포기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고 새로운 노예제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무분별한 스카우트 열풍을 잠재울 새로운 기준=이번 인력파동의 진원지인 삼성전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올해에만 490여명의 정보통신 연구개발 인력이 회사를 떠나 인력유출에 대한 위기감이 깊었는데, 이번 판결로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 회사 한 관계자는 『언제 어디서든 핵심 인력을 빼갈 수 있다면 과연 누가 기술개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판결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도 막강한 재력을 이용해 얼마든지 다른 회사의 인력을 데려올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할 것』이라며 무분별한 스카우트 열풍에 일침을 가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이번 판결을 담당한 수원지법 민사 6부(부장판사 이성호)는 『피소송인들이 동종의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동종업계 범주를 인정하지 않고 포괄적인 경쟁업체 범주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디어링크는 통신전송, 제어, 교환 등의 시스템 또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및 판매를 주력업종으로 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주 사업목적인 전자기계, 통신기계 및 부품 등의 제조판매업과 일치한다』고 밝힌 것이다.
또 소송인들이 제기한 경업금지약정이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에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막고 기업간 건전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업금지약정이 지켜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미디어링크 측은 『이 판결대로라면 삼성전자 직원은 1년간 쉬었다가 취직하든지 아예 금융이나 화학 등으로 업종을 바꿔야 취직이 가능할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전망=LG정보통신의 범유럽디지털이동전화(GSM) 연구소장인 신용억 이사, 팬택의 이성규 사장, 현대전자의 통신부문장 겸 단말기SBU(Strategic Business Unit)장인 송문섭 부사장.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에서 정보통신 개발부문의 요직을 거쳤다. 더구나 회사를 옮긴지 1년이 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대로면 이들은 하나같이 기업비밀을 소지한 인물로서 1년 내에 경쟁사 취업이 불가능하다. 실제 삼성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LG정보통신의 부당 스카우트 혐의를 조사해줄 것을 요구하고, 팬택에도 이성규 사장의 임명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따라서 해당업체와의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퇴직을 희망하는 직원들에게 받아온 「퇴직시 동종업계로 1년간 취직하지 않겠다」는 경업금지 약정도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각서가 관례적인 것일 뿐 강제조항은 아니다』고 밝혔으나 퇴직시 각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퇴직처리가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를 퇴직해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한 관계자는 『경업금지 약정각서야말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와 다름없다』며 분개했다.
결국 삼성전자의 인력유출 방어의지와 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좇는 퇴직자의 대립으로 한동안 법정이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