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훈 경제과학부 기자 chjung@etnews.co.kr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을 놓고 연구원들 사이에 괴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좀처럼 창업기회를 갖지 못했던 출연연 연구원들에게는 최근 불어닥치고 있는 벤처의 열기가 그간의 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좋은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한 연구원들은 이미 연구는 뒷전인 채 온통 돈벌 궁리만을 하고 있는 반면, 뛰어난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돈되는 연구가 아니어서 강건너 불구경해야 하는 연구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싸여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바이오밸리 육성에 힘입어 벤처창업지원센터가 들어서는 등 최근 관심이 집중돼 있는 생명공학연구소 지하 2층 50여평 남짓의 실험실. 정부가 미래 국가연구개발과제로 선정해 올해부터 거창하게 본격 추진키로 한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인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의 연구본부다. 명색이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이곳은 연구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지하창고라는 편이 어울리는 곳이다.
연구원 창업 등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는 바이오벤처센터는 이 실험실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비좁아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학실험장비 등을 복도에 쌓아 놓아야 하는 연구동과는 대조적으로 바이오벤처센터에는 창업지원실 등 호화판 시설을 갖추고 있어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잘 나가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앞으로 10년간 18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전담하는 국가 프로젝트 연구실 치고는 연구에 열중하는 연구원들을 연구소 당국자들이 너무 푸대접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구원들 사이에 벤처창업 바람이 불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어수선한 게 사실인데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연구소측 스스로가 연구환경을 깨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벤처열풍으로 출연연이 아무리 벤처창업에 혈안이 돼있다 해도 출연연의 생명은 연구가 주이고 당연히 실험실의 연구원이 주인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일부 출연연의 행태를 보면 주객이 뒤바뀐 느낌이다. 무차별하게 근시안적으로 벤처창업만을 외치고 있는 정부당국도 문제지만, 벤처창업에만 혈안이 돼 연구현장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출연연 기관장의 의식이 의문스럽다. 기관장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굳건히 자신의 연구실을 지켜가는 독일의 연구시스템이 새삼스럽다.
출연연 기관장은 연구경험을 살려 후배 연구원들의 연구현장을 보장하고 연구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봉사의 자리임을 되새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