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체로 가는 길> 남북 경협에 바란다

李今龍 옥션 사장

김대중 대통령이 국적기를 타고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첫만남을 가졌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반세기 동안의 모순과 상호 불신을 털어내고 새로운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특히 이번 김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간의 경제협력사업은 지금보다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2년부터 3년간 삼성물산에서 대북사업을 관장했던 필자로서는 누구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남북경협 성과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북한과의 교역규모 중에서 약 3분의 1은 우리가 북한에 원자재를 보내 임가공해 다시 들여오는 위탁가공 형태로, 주로 남한의 기술 및 자본과 설비, 북한의 값싼 임금과 공단입지 등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경협사업이 추진되어 왔다. 이와 같은 임가공 형태의 남북한 교류는 필자가 대북사업에 참여했던 5∼6년 전에 활발히 추진되기 시작했던 협력방식으로 이제는 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협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그동안의 임가공 방식 경협사업은 북한을 단순한 생산단지로 활용할 뿐, 기술이전이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을 조성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경협이 확대되면서 남북한간 재화의 교류는 늘어날 수 있었어도 북한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는 어려웠다.

이처럼 남북경협사업이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현재 단순 임가공을 통한 위탁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지식정보화산업을 중심으로 경협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남북경협사업에 벤처기업을 비롯한 정보기술업체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기회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은 수학과 물리학 등 기초과학이 발달했고, 소프트웨어 관련기술에서는 우리나라와 3∼5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발전해 있어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협의 실현성이 높은 분야다.

또한 최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촌을 둘러보고, 해박한 컴퓨터 및 인터넷 지식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북한내 최고책임자의 관심이 정보기술분야에 상당히 다가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자본과 정보기술 관련 노하우와 인프라, 그리고 북한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새로운 남북경협의 매개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경제적 부가가치 이상의 엄청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동포다. 언어와 문자가 같기 때문에 기술이전 및 정보공유에 필요한 언어의 장벽이 없다. 북한이 보유한 상당수준의 기초과학기술, 양질의 인력과 짧은 물류거리 등 굳이 경영학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경제 파트너다.

이와 같은 정보기술분야의 남북경협을 실질적으로 구현해가기 위해서는 벤처기업을 비롯한 국내 인터넷업체들의 관심과 역할이 지대하다. 특히 북한은 정보화 촉진의 근간이 되는 통신시설 기반이 상당히 취약하다. 따라서 북한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우리와의 경협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간인프라부터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가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인터넷 허브로 육성해간다는 전략을 확대시켜 남북한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같이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정보기술분야의 남북경협을 추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북한이 도모하는 개방과 개혁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보기술분야의 남북한 교류사업은 짧은 시일안에 그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국내 업체간 사업협력이나 합작도 상호 이견을 해소하기 쉽지 않은데, 이질성이 해소되지 않고 체제가 다른 북한과의 교류사업은 당장 가시화된 결과를 실현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지속적으로 견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가 인내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보기술분야의 경협사업을 확대시켜 간다면 북한을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에 동참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앞당겨 실현시킬 수 있는 물꼬가 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남과 북의 정상이 오랫동안 묵혀둔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시점에서 조만간 서울의 벤처기업과 평양의 기술자들이 인터넷으로 정보와 기술을 나누는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한나절 백일몽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