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자화폐, 부처간 힘겨루기

『굳이 정통부의 눈 밖에 날 필요가 있습니까.』 『정통부에서 후원하는 단체라는데 뭔가 색다른 게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속에 참여하긴 했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 정통부 후원으로 출범한 전자화폐포럼에 참여한 전자화폐 관련 업체들이 말하는 포럼의 성격과 참여 이유다.

이 포럼에는 현재 전자화폐 관련 분야에서 저마다 최고라고 자부하는 8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런 업체들이 회비만도 무려 1200만원을 내야 하는 전자화폐포럼이 특별히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이 포럼 참가업체 관계들은 이 포럼의 목적이 무엇인지, 포럼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참여한 느낌을 준다.

물론 당사자인 전자화폐포럼측이 얘기하는 포럼의 설립 목적은 전자화폐 인프라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화폐 표준이나 발행은 전자화폐사업을 추진하는 각 사업자들이 알아서 만들겠지만 이들 전자화폐가 사용되는 인프라는 어떤 전자화폐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동일 규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설득력 있는 목적이다.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중복투자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표준을 만들어야 하는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 문제는 이같은 대승적인 목적을 가졌다면 충분한 여론수렴 등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쳤어야함에도 불구, 포럼의 출범 자체가 급조됐으며 뚜렷한 방향성 없이 출범 자체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은 정통부와 산자부간의 전자화폐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부처간 힘겨루기가 깊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통부가 밀고 있는 전자화폐포럼은 산자부가 후원하는 IC카드연구조합의 프로젝트와도 상충하는 면이 많다. 물론 포럼측은 포럼과 조합이 상호 보완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하지만 조합측의 설명은 다르다. 고질적인 부처이기주의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양측의 물밑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전자화폐사업을 추진중인 참여업체들이 혼란에 빠져 자칫 전자화폐 프로젝트 전반의 계획과 일정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자화폐사업은 국가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업이다. 부처간에 적극 협력해도 어려운 게 많은 것이 전자화폐사업이란 점을 정통부와 산자부는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