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38) 벤처기업

해외 진출<28>

하얼빈에서 여러 날 머물렀다. 나는 나흘 정도 머물 예정이었고, 실무진들은 계속 체류하면서 만토집단과 협력하기로 했다. 그 일을 돕기 위해서 북경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도 하얼빈으로 왔다. 하얼빈은 이제 막 눈축제인 빙등제가 시작됐다. 빙등제란 얼음으로 각종 모양의 조각을 만들어 전시하는 행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얼빈이 워낙 추웠기 때문에 그러한 축제가 가능했다. 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빙등제는 거리에서도 얼음조각이 보였고, 개인들이 상점 앞에 만들어놓기도 하였다. 밤이 되면 등을 비추어서 그것은 마치 얼음나라 같은 느낌을 준다. 겨울에 올 때마다 보았던 축제지만, 하얼빈에 회사를 설립하는 일이 있어서, 마치 우리를 위한 축제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귀국할 날짜를 하루 앞두고 그날 밤에 스탈린 공원으로 나갔다. 그곳은 송화강을 끼고 태양도를 마주보고 있는 공원으로 하얼빈의 중심 유락지였다. 그곳에서 얼음축제가 있었다. 그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입은 옷은 한결같이 옷이라기보다 이불로 몸을 감은 듯했다. 나는 겨울철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 편이었는데, 하얼빈에 와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것도 한 겹 정도 입어서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공원에서는 음식을 팔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뜨거운 음식이 잘 팔렸다. 더러는 포장마차 같은 노점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식당이었다. 여름에는 문이 활짝 열리고 실내가 드러났지만, 겨울에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였다. 포장마차에서는 어묵 같은 뜨거운 음식을 팔았는데, 솥에서 김이 나오는 것이 마치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같았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산책을 했는데, 만토집단의 부총재 왕씨가 우리를 안내했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려고 하자 왕씨는 불결하다고 먹지 말라고 했다. 펄펄 끓이기는 하지만 비위생적이라고 설명했다. 자기 나라의 공원에서 파는 음식을 무척 경멸하는 어투였다.

그때 왕씨의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나를 찾는 전화였다. 내가 전화를 받자 뜻밖에도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 있어예?』

『중국이지 어디야. 이 밤에 웬 전화야?』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왜냐하면 근래에 아버지의 병환이 악화되고 있어서 어딜 가든 연락처를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얼빈에 갔을 때는 만토집단의 총재 방이나 부총재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