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1> 북한을 동반자로 인정하자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지난 80년대 중반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사회구성체 이행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한 사회에 두 가지 생산양식이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오랜기간 논쟁을 벌였다. 한 사회체제내에 다양한 형태의 생산양식의 존재여부를 따지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공동선언문은 이 당시 논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공동선언문에는 한 민족이 구성하고 있는 2개의 국가, 2개의 체제를 인정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족은 하나지만 두 개의 체제와 국가를 서로 인정하자는 것. 내용은 다르지만 당시 벌어졌던 사회구성체 이행논쟁의 의미와 너무도 흡사하다.

남북한은 14일 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여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남북경협 역시 이 선언문 내용처럼 2개의 사회체제,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남한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북한 경제는 확연히 다르다.

얼마전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한 과학자는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우리과학자는 중국과학자에게 『한달치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중국과학자는 교수급 과학자 한달치 월급은 우리 돈으로 12만원 정도가 된다고 답변했다. 중국의 교수급 과학자는 우리나라 책임급 연구원과 비슷한 등급.

언뜻 따져 보더라도 우리 책임급 과학자는 중국과학자 3년치 연봉을 한달 월급으로 받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나라 과학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 『이직률이 높지 않느냐』는 투로 물었다.

중국과학자는 이에 대해 『그래도 중국 어린이들은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꼽는 사람이 많다』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남북경협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이 바로 이러한 형태의 상호비교다. 우리는 우리 관점에서 북한이 가난하고 「꽃제비」가 우글거리는, 「해수욕을 묘향산으로 가는 나라」로 이해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는 상대방과 비교해 「우리 체제가 더 낳다」는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 상호간의 비교는 비방과 경쟁을 낳는다.

북한은 그간 기본적으로 자력갱생 원리에 입각한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 자국 내에서의 입고 먹는 것은 자국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자력갱생의 원리다.

정보통신분야 협력을 추구하더라도 북한과 남한의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 경쟁을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익숙한 남한과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입각한 북한의 정보통신은 내용면에서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에서 북한에 대해 특혜를 베풀고 물자를 지원한다는 시혜적 차원의 접근논리는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 남북공동선언문에서 나온 것처럼 상호 사회체제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경제협력이 논의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진용옥 정보통신대학원장은 『흡수 논리에 의한 북한의 경제적 지원은 남북한 모두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진 교수는 『남북한 정보공동체를 형성하려면 생활, 문화의 동질성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며 『적어도 남북한 통일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단 55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북한 상호간 서로의 국가체계와 경제제도를 이해하는 일은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경협과정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기업들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 다양한 형태로 진출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부 기업들은 해당국에서 노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사를 설립한 기업주가 해당국의 문화·사회적 풍토를 이해하지 못하고 군림하려했기 때문이다.

해당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뒤처진 그 나라 근로자에 대해 임금체불, 인격모독 등의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민족인 조선족을 상대로 한국에 취업을 시켜준다며 사기행각을 일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우리의 남북경협은 그간 다져온 이같은 사회주의 국가 진출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지나친 과욕과 급진적인 기업논리의 확장은 불어오는 남북한 화해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