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통신 인증제 확립해야

각종 정보통신 장비의 시험과 인증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공인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보통신시스템에 대한 시험 및 인증제도는 국제표준화기구(ISO) 지침 58 등 국제규범에 따라 각국 정부가 대행 인증기관의 시험결과를 통해 인증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또한 그 결과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ISO가 공인하는 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약해서 관련 장비와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산 장비와 시스템 성능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큼 향상되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장치가 없어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업계는 국산 제품의 성능과 상호 망운용성을 의심하는 외국 바이어들의 요구대로 제 3국의 기관을 경유해 품질인증서 등을 발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외국 기관을 통해 인증서를 발급받을 경우 고가의 비용부담과 납기지연은 물론 국내 기술개발 현황과 핵심기술이 해당국에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통신에 대한 시험·인증제도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시스템 및 기기간 상호접속 및 운용성 확보 요구에 따라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 운용돼 왔다.

미국의 경우 지난 96년 개정된 전기통신법에 따라 인증기관을 지정해 강제 표준 방식의 시험·인증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집행위원회가 수립한 정책에 의거해 회원국가가 인증기관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관련 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정보통신시스템의 국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ISO적합성평가위원회와 국제전기규격(IEC)을 바탕으로 상대국 시험·인증관련 사항을 서로 인정해 줌으로써 관련 기기 및 시스템의 수출입 과정을 자유롭게 해 주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 네트워크장비시험센터 등이 시험 및 인증업무를 대행하고 있으나 그 대상이 일부 품목에 제한돼 있고 운용 자체가 초보수준이어서 국제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들 기관의 업무 자체가 정부공인을 받지 못해 「사설」 인증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통신산업의 세계적 흐름을 볼 때 국가 차원에서 표준을 강제하고 시험·인증제도를 도입·운용하는 일은 이제 관련 기술 개발과정에서 필수항목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매번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외국기관의 성능시험을 통해 인증서를 발급받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시간적 손실을 가져오는 일인 것이다.

앞서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우리도 이제는 정부 차원의 시험·인증제도를 마련해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인증기관의 양성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이 과정에서 꼭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령 지난 60년대에 제정된 한국공업규격(KS)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정보통신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함으로써 KS제도가 갖는 공신력이나 브랜드가치를 살리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또한 기존 통신단말 등에 적용되는 형식승인제도 등을 확대 적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