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다. 한국과 헝가리간의 과학기술 교류를 위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회사 일이 궁금해 e메일을 열람해 봤더니 필자의 얼굴 사진이 급히 필요하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사진 찍히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집에 연락해도 적당한 사진이 없을 터였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차에 마침 일행 중에 한 분이 들고 온 디지털카메라가 눈에 띄었다. 급한 대로 호텔방 안의 벽에 기대 선 채로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JPEG로 저장한 사진 디스켓을 들고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PC방을 찾았다.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한국으로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사이버카페」란 간판이 달린 이 PC방에서 한국으로 사진을 보내며 「이제는 디지털자료를 만드는 것이 매우 쉬워졌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 시장이 잠재능력에 비해 그동안 활성화하지 않았던 이유는 텍스트에 비해 디지털로 된 콘텐츠의 생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경우 워드프로세서가 일반화돼 있어 누구나 쉽게 디지털로 된 텍스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로 된 멀티미디어의 생성은 기술적으로 더욱 세심한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디지털로 된 사진 자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어서 그것을 현상해 사진으로 만든 후 또다시 스캐너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영화나 TV에서 방영된 동영상을 디지털화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기술적 단계와 비싼 장비가 있어야 비로소 MPEG같은 형태의 디지털 동영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MPEG같은 동영상 압축 기술이 나오기 이전인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0분짜리 TV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것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좋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디지털카메라가 벌써 몇 년 전에 선을 보여 일반화했을 만큼 디지털로 된 사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TV도 이제 디지털TV를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다니, 디지털 콘텐츠에 목말라하는 많은 정보 유통업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영화사들은 이미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찍을 준비가 끝났다. 이제 영화 테이프를 복사해서 세계 각국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디지털 영화를 위성으로 보내면 우리나라 관객들은 디지털극장에서 그 영화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텍스트만 검색하던 시대의 기술로는 멀티미디어로 된 정보를 검색하기가 역부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우리는 멀티미디어의 검색을 위한 준비가 너무나 부족하다. 특히 인터넷에서 오가는 정보는 디지털미디어란 이름으로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정보속에 텍스트·비디오·음향 등 여러 미디어가 통합돼 있는 형태이지 각각의 미디어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그것과 관련된 모든 디지털미디어 정보가 찾아지는 통합 정보검색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이미 검색엔진 사용자들은 키워드 단어 하나만으로 그 단어가 있는 문서를 전부 볼 수 있다는 것을 더이상 신기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라지도 않는 정보가 너무 많이 검색되다 보니 짜증을 낼 정도가 됐다. 이제 그들은 영상물 중에서 그냥 「비」를 찾고싶은 것이 아니라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 혹은 「연인의 우수를 품은 안개비」를 찾고 싶어할 만큼 인터넷 적응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인터넷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요즘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시장을 열어 가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