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36>
나는 술이 취해서 유 회장에게 집안 고부갈등에 대해서 모두 털어놓았다.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집안의 상처를 드러냈다. 유 회장은 별다른 말 없이 들었지만 그는 나의 아내 편에서 생각했다. 내가 어머니 편에서 말하고 있는데도 그는 아내를 두둔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를 편들고 있는 것도 문제일까. 어머니는 늙었기 때문에 많이 살지 못하니 앞으로 오래 살 우리가 이해를 하고 양보를 하자는 것이 내가 아내를 설득하려고 하는 유일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유 회장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누가 더 오래 살고 빨리 죽느냐는 문제는 삶을 이해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 산다는 보상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는 없으며 그런 식으로 한다면 어머니는 과거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직 많이 살지 못한 며느리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반대의견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 회장의 그 말에도 나는 젊은 사람이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 주장하는 것은 이해력이다. 아버지는 약간 무지하고 어머니 역시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편협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니 아내에게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맹목적이기 때문에 고부 갈등의 원인조차 모르고 있으며 단순히 며느리가 미울 뿐이었다. 두 번째 이유도 유 회장이 반론을 폈다. 인간이 이해력이 있다고 해서 양보하라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이해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학대에 해당한다고 했다.
유 회장의 생각대로라면 어머니와 나는 아내를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는 시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할 사람도 아니고, 그녀는 결혼 초기부터 의견을 말하고 관철할 만큼 자기 주장이 명확했다.
유 회장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방을 나가지 않자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냥 가겠다고 하였다. 유 회장은 나와 함께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여자들을 보냈다. 그리고 냉장고에 술이 떨어져 룸서비스로 더 시켰다. 그렇게 자정이 넘을 때까지 술을 마시면서 나는 아내를 비난하였고, 유 회장은 그냥 가버린 여자를 욕했다.
유 회장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병원 입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