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37>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나는 새벽에 잠깐 잠들었고, 그때 꿈을 꾸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싸우는 꿈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화가 난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히죽거리고 웃었다. 잠이 깨고 생각하니 상당히 불쾌한 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얼빈에서는 눈이 내리는 날이 덜 추운 날이었다. 그러나 호텔 방과 밖의 날씨는 차이가 컸고 창 밖을 보는 동안 입김에 의해 유리에 성에가 끼어 밖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울의 병원 입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밤 늦게까지 유 회장과 함께 그녀를 비난했던 일이 떠올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부드러운 말로 물었다.
『밤 새웠소? 수고가 많군. 아버지는 어때?』
『그냥 혼수 상태예요. 밤을 못 넘기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다행이에요. 당신이 오실 때까지 별 일 없었으면 좋겠어예.』
『어머니는 어떠셔?』
『지금 입원실에서 주무시고 계셔예. 전화 바꿔 드릴까예?』
『아니, 할 말도 없는데 깨우지 마. 그럼, 이따가 봐. 당신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침을 먹으라구. 돌아가실 분은 어차피 돌아가신다지만, 살 사람은 몸 생각을 해야지.』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마음에 없다기보다 평소에 하지 않는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 말에 약간 놀랬는지 아내가 다른 말을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그럼 전화 끊겠어. 계속 수고해줘.』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수고하는 아내에게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왠지 아내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아부하지 않고 어쩌랴. 더구나 꿈 속에서처럼 어머니에게 삿대질을 하는 격돌이 벌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서울 공항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있었으나 숨은 붙어 있다고 하였다. 회사에서 운전기사가 차를 가지고 나와 대기하고 있어 나는 그 차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달렸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있었으나, 내가 도착해서 십여분 만에 돌아가셨다. 의식은 잃었으나 아들이 온 것을 알았던 것일까. 아버지는 마지막에 아들을 위해 한가지 일을 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불효자를 모면해 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