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지도의 초안 발표로 불로장생을 꿈꿔온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게 됐다. 인간 유전자가 의학적인 인간해석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때 유전자 기능에 대한 완전 해석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은 인간생명에 신기원을 열었다고 해도 충분하다.
이번에 발표된 초안에는 10만여개로 추산되는 인간 유전자의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30억개에 달하는 게놈 염기서열의 90% 정도에 대한 설명도 담고 있다. 게놈지도의 완성까지는 아직 2년여의 기간이 더 필요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만으로도 생물학·의학·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예약됐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게놈지도 초안 완성으로 생명과학이 21세기를 대전환점에 들어서게 했다.
따라서 벌써부터 게놈지도의 초안을 근거로 난치병의 예방과 치료 등 인간 생명연장을 위한 세계 각국의 연구 경쟁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생물체의 기능과 정보를 활용해 인류가 필요로 하는 물질을 생산하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바이오산업은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하며 의학은 물론 전자, 환경 등 관련분야가 다양할 뿐 아니라 첨단산업중 가장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인간유전자 정보해석으로 생명공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정보기술(IT)과 융합하면서 21세기 바이오혁명은 인간생활 전반에 스며들며 바이오사회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이번 게놈지도 초안 작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미국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미 수년전부터 포스트 인간유전체프로젝트(HGP)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산하에 이번 게놈연구를 주도한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를 두고 미국의 전체 과학기술 예산의 20%가 넘는 180억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개별 기업의 연구도 상당 수준에 올라 있어 이를 이용한 제약, 의료 분야의 상품들이 연내 선보일 전망이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는 이미 게놈관련 연구프로젝트만 51개나 진행중이다. 프랑스의 게놈연구는 96년 설립된 국립유전자연구소(CNS)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프랑스 정부는 이 연구소에 연간 128억원의 연구기금을 지원할 만큼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밖에 CNS 외에도 유전병 전문 연구기관 세네통, 질병 유전자를 규명하는 국립제노타이핑센터, 게놈과 분자 생물학을 연구하는 인포바이오젠 등 수많은 연구기관들이 유전공학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게놈지도 초안의 실제 의약 분야에서의 적용도 어느 나라보다 빨리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과 함께 HGP를 사실상 주도한 영국은 지난 53년 정부 의학연구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구조를 처음 밝혀냈고 단세포항체와 DNA지문조사 등 학문적인 기틀도 마련해 놓았다. 민간부문의 연구개발투자도 천문학적인 수치여서 제약업계 하나만 하더라도 전체 매출액의 15%인 총 30억파운드를 생명공학부문에 투입하고 있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권 국가를 대표해 HGP에 참여한 중국도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인간·동물·야채·벼 등의 유전자 복제나 변형 연구에서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유전체연구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다국적 HGP에 참여한 18개 선진국에 비해 기술, 인력, 연구비 등에서 크게 뒤져 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국가연구프로젝트로 게놈연구를 시작한 지 불과 4년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연구개발 열의와는 달리 우리 정부는 고작 미래원천기술의 하나로 생명연과 20여 대학연구팀을 중심으로 한국인 종양관련 유전체정보를 해석해내는 한국형 게놈연구사업에 머무르다 지난 해 말에서야 포스트 HGP사업의 하나로 21세기 프런티어연구사업인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을 출범시켜 앞으로 10년간 총 1740억원(정부 1300억원, 민간 400억원) 등을 투입해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위암 및 간암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연구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이번 게놈분석이 사실상 가장 큰 과제인 인간유전체의 기능적인 규명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포스트 HGP에 대한 준비는 선진국에 비해 늦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업단은 이미 공개된 HGP의 게놈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유전자 기능연구에 몰두한다는 전략이다. 이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연구성과를 거두게 될 경우 앞으로 2∼3년내에 위암이나 간암과 같은 질병의 유전자칩 등 기능연구를 위한 기틀이 마련되고 3년후에는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진단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후보유전자 1500개, 목표유전자 150종에 대한 기능분석이 완료되면 국내 위암환자의 생존율이 현재보다 배이상 높아져 80%에 이르게 되고 간암환자의 생존율도 30%로 크게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게놈정보공개와 함께 본격화될 특허전쟁에서는 사실상 무방비상태다. 특허청에 등록된 유전자 특허의 63%가 이미 외국인에 의해 출원된 상태로 셀레라지노믹스, 인사이트 등 민간유전자정보 벤처업체들이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클레임을 제기해 올 경우 꼼짝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기술료를 지불해야할 처지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