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40>
윤 실장과 나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서 곧이어 안내한 사람들을 따라 크레물린 궁의 대통령 보좌관실로 갔다. 라스토푸친은 사십대 초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거의 내 나이 또래였다. 그와 악수를 하고 나서 자라에 앉자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한때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한 일이 있었지요?』
나는 적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했던 일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통신 감청 시스템을 연구한 기술요원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감청 시스템 연구과정에 KGB통신망에 잠입을 했다가 체포된 일이 있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위해한 분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알아보겠습니까?』
『글쎄요. 나로서는 초면인데요.』
『기억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시 나는 KGB요원으로 표트르 즈이코프 국장 밑에서 일했습니다.』
표트르 즈이코프는 당시 KGB의 통신통제국장이었다. 체포된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몸집이 깡마르고 엄격한 스타일이었으며, 소문에 의하면 뇌물을 좋아하고 외국인들을 별장에 초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러시아도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과거 구 소련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귀하를 초대하여 기술용역을 부탁할 만큼 우리 역사도 바뀌었지요.』
그는 당시에 내가 했던 일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후에 당신은 사업체를 일으켜 성공했군요.』
『아직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이릅니다. 다만 과정이지요.』
『중국의 만토그룹과 송화강 수리개발 합작회사를 만들었지요? 나는 만토그룹의 류 총재를 잘 알지요. 그는 정확한 사람입니다. 그가 당신과 손 잡았다는 뜻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당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당신회사와 손잡고 싶습니다.』
그의 어투는 다분히 사교적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선 투자를 종용하는 러시아적인 상투성이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보좌관실에는 라스토푸친 이외에 두 명의 간부가 배석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한 명은 라스토푸친이 하는 말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때 여자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공항에서 벤츠를 운전하고 왔던 백러시아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