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41>
『최 사장, 여자를 소개하지요. 아까 공항에서 만났을테니 구면이겠군요. 이 아가씨는 직원이기도 하지만, 내 처의 동생입니다.』
라스토푸친이 찻잔을 들고 들어온 여자를 소개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 감탄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운전기사로 차를 끌고 온 여자가 이제는 찻잔을 나르고 있었다. 길거리를 달리는 차(車)와 마시는 차(茶)는 발음이 같지만. 나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왔지요. 영어로 말하면 나보다 더 잘합니다. 서른 다섯 살의 노처녀입니다만, 아직 시집을 못간 것이 탈이지요.』
여자가 러시아 말로 무엇이라고 말했다.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나이를 들먹였기 때문에 형부에게 핀잔을 준 것 같았다. 배석하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라스토푸친은 어깨를 올렸다 내리며 두 손을 벌려보였다. 여자가 찻잔을 놓고 방을 나가자 라스토푸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최 사장은 좀 놀랐을 것입니다. 내 처제가 운전을 하고 손님을 맞는가 하면 이번에는 찻잔을 날라서 말입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이지요. 다만, 국빈에 해당하는 특별한 손님이 오면 취하는 서비스입니다. 최 사장은 에스키모의 전통 가운데 이런 일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에스키모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자기 아내를 내주어 그 손님의 잠자리에 들게 합니다. 최대의 서비스이지요. 손님은 주인의 아내를 취하지 않으면 실례가 된다고 합니다. 이해 안되는 일이지만요.』
라스토푸친이 웃었고 뒤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직원들도 따라 웃었다. 나도 웃었지만 다만 웃는 소리를 내었을 뿐 표정은 굳어 있었을 것이다. 국빈이라는 말이 나오고 에스키모의 손님맞이 전통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내가 대사관에 근무하던 십여 년 전보다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시장에 돌입했으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마저도 달라진 판국에 그것을 버린 러시아로서는 많이 개방되었을 것이 당연하다.
라스토푸친의 처제가 가져다준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사업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공장 자동화시스템의 패키지화는 일본에서 앞섰지만 그 생산가격은 비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