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52) 벤처기업

해외 진출<42>

컴퓨터 산업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앞선 것은 인정하지만, 자동화 패키지 분야가 반드시 일본이 앞섰다는 기준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이냐고 나는 반박했다. 나의 회사가 개발한 PCMS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 기업체에 수출한 기술 로열티 명세서를 보여주었다. 일본어와 영어가 뒤섞여 있는 기록철이었지만 그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연설명을 하였다.

『일본이 전체적인 우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가 앞서 있는 것도 있습니다. 자동화 소프트웨어 분야는 다양하고 그 종류와 성격이 많습니다. 우리 회사가 개발한 PCMS는 일본을 비롯한 국제 여러 나라에 특허를 내었습니다.』

『기술 분야의 우수성이나 특별함은 전문가의 진단이 따라야 하겠으나 그 점에 대해서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일본의 기술용역은 돈이 많이 듭니다. 그에 비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기술용역은 저가로 매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요. 같은 기술수준으로 저가의 매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국제 경쟁력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스토푸친은 먼저 가격부터 내리고 보자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때 KGB요원으로 정보계통의 관료였겠지만 이제는 비즈니스 일선에 서서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그의 출신성분은 과학 기술자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첫인상은 엔지니어라기보다 비즈니스맨이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백러시아의 예쁜 처제를 내세워 미인계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국빈이며, 에스키모의 서비스 정신을 언급하는 태도가 바로 장사꾼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라스토푸친 한 사람을 통해서 러시아의 관료들을 매도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깊이를 체득하기에 앞서 나쁜 것부터 습득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원칙론에 입각해서 각기의 입장을 피력했다. 결국 그는 러시아에 자본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나에게 투자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득을 달러로 가져가지 말고 다른 원자재로 가져갈 수 있는가 물었다. 그것은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대외 경제원칙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내가 거부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나로서는 단서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프트웨어 기술산업을 경영하는 입장이지 무역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물 교환과 같은 그러한 거래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