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59) 벤처기업

해외 진출<49>

여자가 사양하면서 상냥하게 웃었다. 웃을 때 볼우물이 파이는 것이 어디서 많이 보았던 얼굴이었다. 그 인상이 바로 15년 전 내가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만났던 나타샤의 인상이라는 것을 그날 저녁 만찬에서 깨달았다. 그녀는 실제 라스토푸친의 처제였다. 나타샤는 라스토푸친의 아내였다. 아카데미 과학대학교 총장 취임 리셉션에 그곳의 교수이기도 한 라스토푸친은 아내와 함께 나왔던 것이다. 나타샤는 그 파티에 내가 참석한다는 것을 남편에게서 듣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목에는 내가 15년 전에 레닌그라드 고스티니스브르 백화점에서 미화 100달러를 주고 사주었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모스크바에 왔을 때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만나게 되자 내 가슴이 마구 떨렸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나타샤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다. 15년 전에 내가 가르쳐주었던 말이었다.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그녀가 가르쳐 준 일이 있는 러시아말로 인사를 했다.

『하하하, 두 분은 서로 잘 아는 구면이군요. 내가 한국의 과학자이면서 기업인을 만난다고 하자 아내는 당신 이름을 물었습니다. 딱 맞추었던 것이죠. 최 사장이 모스크바 대학원에서 내 아내와 클라스메이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라스토푸친이 그녀의 옆에서 인심 좋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나는 문뜩 짓궂게도 크렘린 궁 대통령 보좌관실에서 그가 말했던 에스키모인이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전통이 떠올랐다.

『그 사실을 조금 전에 집에서 출발할 때 알았습니다.』

라스토푸친은 묻지 않는 쓸데 없는 말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선심이나 쓰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래서 나타샤와 나는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동그란 포도주 잔을 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잔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술처럼 나도 모르는 말이 흘러나왔다.

『15년이 흘렀는데도 나타샤는 여전히 젊고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상당한 실력자이고 훌륭해 보이더군요.』

그때 나는 문뜩 그녀가 나에게 청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따라가겠다고 한 말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