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민간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4810개의 기업부설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해 모두 13조252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보다 30%, 그리고 98년에 비해서는 무려 70% 가량이 증가한 수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이미 지난해 IMF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민간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비를 꾸준히 늘려나가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신규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의욕 증대다. 투자의욕의 증대는 경제 전반의 업무구조 조정이 어느정도 마무리돼 기업들의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된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익의 지속성을 위해 기업들이 연구개발 활동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연구개발비의 증가가 벤처 창업붐과 함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기업연구소의 설립 붐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한 해 기업연구소의 설립건수는 96년과 98년새 3년간 기록된 설립건수와 맞먹는 1000여건이며 올해는 다시 그 2배인 2000여건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총 민간기업연구소의 수도 지난해 말 4810개에 이어 연말까지는 68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기업연구소가 6000개를 돌파한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중심이 돼 이끌어 왔던 각종 연구개발의 무게 중심이 산업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IMF 이후 위축됐던 우리나라 과학기술력이 새로운 도약을 통해 선진국형으로 이행돼 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비 규모나 투자 주체를 놓고 볼 때 대기업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정부가 적극적인 육성시책을 펴고 있는 벤처기업 등 중소기업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 총투자비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의 경우 지난 97년 14%이던 것이 올해는 31%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기업연구소 설립건수 역시 중소기업의 증가세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지난 98년부터 지난달까지 새로 설립된 3136개 연구소 가운데 벤처기업을 포한한 중소기업의 것이 무려 97%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투자비와 연구소의 가파른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연구소당 연구인력 수와 연구인력 1인당 연구개발비가 오히려 감소하거나 답보상태에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외화내빈 현상이 실질적인 연구개발의 성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한 실적 쌓기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연구인력을 늘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개발비를 투자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균형 있는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들이 최근들어 연구개발 투자비의 증액과 함께 내실 있는 연구소 운영을 요구받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