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용 넷컴스토리지 사장 sycho@netcomstorage.c
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를 통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 기원전 3500년경 이집트에서는 상형문자로 파피루스 책을 만들었다. 유럽의 로마자가 출현한 것은 기원전 238년이고 중국의 한자는 기원전 100년경 이미 만들어 사용됐다.
우리 조상도 기록의 역사만큼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유산을 갖고 있다.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0년경)과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1377년)만 봐도 우리의 인쇄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알 수 있다.
특히 1236년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일 정도로 인쇄문화의 꽃이다. 16년간에 걸쳐 8만1258장의 목판이 지금까지 단 1장도 뒤틀림이나 훼손됨 없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목판인쇄물을 보관해온 조상의 슬기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 수는 23행 14자이며 전체로는 5200만여자에 이른다. 이를 오늘날의 디지털 단위로 환산하면 104메가바이트(MB)가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 저장장치인 플로피디스크(1.44MB)와 CD(650MB)의 저장용량과 비교하면 현재의 저장장치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토리지인 중대형 컴퓨터용 저장장치(RAID) 제조분야에서 일해온 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된다. RAID는 일반인에게는 낯설은 용어겠지만 개인용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드디스크의 기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RAID는 다수의 하드디스크를 하나로 연결해 거대한 단일 드라이브를 구축하는 데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대용량 저장장치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며 현재 2테라바이트(1TB=1000GB=100만MB) 저장용량까지 RAID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도 RAID는 드라이브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데이터를 자동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든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RAID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빠르게 늘어나는 데이터의 양은 스토리지 시장을 더욱 팽창시킬 것으로 여겨진다. 이동통신업체들이 제공하는 휴대폰의 음성 저장과 인터넷 포털업체들이 제공하는 무료 e메일은 업체마다 가입자가 수백만명에 이르기 때문에 스토리지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양의 데이터가 오가고 멀티미디어의 발전으로 음성을 디지털화한 데이터의 양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스토리지는 음성을 뛰어 넘어 영상을 디지털화하는 기술로도 발전하고 있다. IMT2000 사업이 구체화되면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영상을 통해 전화통화를 하고 머지 않은 미래에는 영상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 세상이 오게 된다. 앞으로는 비IT 분야에서도 스토리지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에서는 X레이 필름 등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현재의 도서관도 보관돼 있는 모든 서적을 전자화해 곧바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방송국도 과거 40년 가까이 보관해온 아날로그 방식의 비디오를 전부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같은 스토리지 시장의 팽창은 세계적인 IT리서치기관인 미국의 IDC 자료에서도 뒷받침해 준다. 대용량 저장시스템 세계시장 규모는 연평균 19% 이상 성장해 오는 2003년에는 6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스토리지 시장은 올해 000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매년 40%의 고속성장을 거듭해 오는 2002년에는 약 4000억원을 형성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스토리지 시장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국산업체들이 틈새시장을 찾아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지가 이처럼 유망성장산업인 만큼 우리 조상이 팔만대장경 등 인쇄문화에서 빛낸 업적을 거울삼아 국내 주자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