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위기설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벤처버블론과 코스닥 침체 장기화에서 비롯된 자금시장의 경색으로 올 가을 벤처기업이 줄줄이 도산할 것이란 얘기가 벤처기업인들의 술자리에서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인터넷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M&A 시장에 스스로 나서는 벤처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거침없이 성장해온 한국의 벤처산업이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말라버리고 말 것이란 극단적인 얘기까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혹자는 최근의 상황을 지난 97년 IMF 직전의 상황에 연결시켜 「벤처IMF」니 「신IMF」니 하며 호들갑까지 떨고 있다. 물론 요즘의 벤처업계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침통하다.
그러나 97년과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자금이나 마케팅 면에서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시장이 수개월째 얼어붙었지만 좋은 벤처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자본을 유치한다. 인터넷 기업이 어렵다지만 높은 매출 성장률과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판단하는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들도 많다.
문제는 벤처비즈니스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벤처는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률이 높은(high risk, high return) 비즈니스기 때문에 성공률은 보통 10% 이내로 본다. 열 개 중 한 개만 성공해도 괜찮은 것이 벤처비즈니스다. 다시말해 「십중팔구」는 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바로 벤처비즈니스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국민 모두의 벤처비즈니스에 대한 인식 수준은 아직 매우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 기업, 기관, 개인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투자기업 중 단 한곳에서도 실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망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중기청에 등록한 벤처기업이 1만개를 바라보고 있지만 망했다는 벤처기업은 드물다.
10개 중 8, 9개가 망하는 것이 벤처라면 최근의 상황은 그렇게 위기라고 볼 것만은 아니다. 망해야 할 기업은 빨리 망해야 괜찮은 기업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벤처문화가 조성된다. 물론 이에 앞서 망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자유롭게 망하고 자유롭게 재기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벤처비즈니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경제부·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