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와 LG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제휴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마켓이라는 시장목표를 향해 나아갈 방법의 하나를 제시해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양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제휴로 현대전자는 D램·디지털신호처리기·시스템반도체 등 주력생산품을 LG전자에 최우선 공급하고, LG전자 역시 신제품 개발시 현대의 반도체 스펙을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유형의 기업간 제휴는 지금까지 수없이 이루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휴가 기업 간의 단순 협력수준을 넘어 전략적 차원으로 해석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양사는 이번 제휴를 통해 자사의 단점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극복하려는 전략적 노력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이번 제휴가 이뤄진 배경을 놓고 볼 때 현대전자는 사실상 시스템(기기)사업을 하지 않는 반도체 전문회사이고 LG전자는 전용 반도체공장을 갖지 않은 시스템개발공급회사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반도체 상위 랭커인 현대전자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시스템공급회사인 LG전자라는 거대 수요처를 국내에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갖춘 셈이 된다. LG전자 역시 수급 메커니즘이 유난히 복잡한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핵심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상황은 두말할 것 없이 현대전자의 반도체 기술과 LG전자의 시스템 기술이 최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마켓 전략의 공동개발이라는 엄청난 시너지가 양사 모두에 돌아갈 것임도 명약관화한 일이다.
현대전자-LG전자 제휴 모델이 평가를 받는 두번째 이유는 사실상 상극이다시피 했던 양사의 기업문화가 이번 제휴를 통해 상호협력과 조화라는 상생의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전자는 지난해 그룹간 사업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한 바 있다. 당시의 합병이 소속 그룹간 자발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LG그룹이 크게 반발했던 상황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빅딜 이후 업계 일각에서 양측의 소원한 관계를 크게 우려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양사가 당장 상호협력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서로의 앙금 때문에 그 성사는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관측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양사의 제휴는 글로벌 마켓의 공동대응이라는 성과에 앞서 기업문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데 그 의미가 충분한 것이다.
21세기 지구촌시대를 맞아 우리 모두는 글로벌 마켓이라는 무한하고 거대한 희망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세계시장 공략이 과거처럼 의지 하나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틀의 시장전략에서부터 유연한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의 개발이 필요한 때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현대전자-LG전자의 전략적 제휴는 글로벌 마켓 시대의 기업들이 취해야 할 행동강령의 하나를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 제3의 현대전자-LG전자 제휴모델이 잇따라 출현해 주었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