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69) 벤처기업

러시아의 마피아<9>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녀는 그 일을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왠지 다음 말이 알고 싶어서 물었다. 그때 문뜩 15년 전에 나를 따라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말이 상기되었다. 그것은 나와 결혼하자는 청혼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청혼을 하였고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녀에게 죄를 지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더군요.』

대답하지 않은 것은 시인했다는 뜻일까. 15년 전에 그녀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그녀의 남편이 나를 사랑하냐는 엉뚱한 질문을 한 것일까.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나 사이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으나 그것을 이야기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나는 돌려서 말했다.

『나타샤, 지금도 당신은 미국으로 가고 싶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지금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나는 약간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지금은 러시아와 한국이 국교를 맺고 있으니 언제든지 갈 수 있잖아요? 원한다면 내가 귀국한 후에 초대하지요. 그리고 15년 전에 모스크바며 레닌그라드를 안내해준 그 보답을 내가 하겠습니다. 정말 오시겠습니까?』

『다음 기회에 가겠어요. 지금 가겠다면 남편은 또 그 질문을 하겠지요. 미스터 최를 정말 사랑하냐고.』

『하하하, 당신의 남편은 당신과 나를 의심하나 보군요. 우리는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다는 사실뿐 별다른 일은 없었잖아요?』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육체적인 일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녀 역시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당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흘러가는 바람일 것으로 생각했는데도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마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재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불이 당겨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무서워요.』

나는 이제 웃지 않았다. 겁이 나면서 슬며시 도망갈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