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닷컴기업의 구조조정

『현재의 상태대로라면 올 하반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고민입니다. 한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연봉을 주어가며 엔지니어를 모셔왔지만(?) 지금은 매달 월급주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인터넷 벤처기업 한 사장의 한탄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금이 문제되리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자금을 구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투자 배수가 문제였고 어떻게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운영자금이 부족하다. 마냥 봄만 같다고 여겼던 벤처기업에도 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닷컴위기론에 대해 벤처기업 임원급 이상의 고위 간부직은 구조조정의 수순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수많은 인터넷 벤처기업 중 「옥과 석」은 반드시 구별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 뒷편에는 자기 기업만은 「옥」이라는 「아전인수」격인 생각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구조조정 수단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M&A에 대해서는 전체 조사대상 기업의 0.8%만이 고려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답했을 뿐이다. 대부분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인원을 감축하는 선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사무실을 축소하거나 광고 등 마케팅비용을 줄이는 등 비용절감에만 눈을 돌렸을 뿐 아직도 대다수 경영자들은 기업을 팔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이미 자금이 소진된 상태에서 사업규모를 축소하거나 인원을 감축해 봐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미 한 차례 열풍이 지난 후에 과거와 같은 투자붐을 다시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국내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신선한 새 패러다임을 선물해준 벤처들은 자구의 때를 놓쳐 정부의 서슬퍼런 구조조정 칼날을 맞은 선배 기업들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것만 최고라고 여기는 아집은 오히려 벤처불황을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국내 경기가 진흙탕속을 헤매고 있다. 계열사 분리가 마치 회사의 도산을 뜻하는 것마냥 움켜쥐고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왕자의 난」이니 「굴뚝산업의 한계」니 하며 비아냥거렸던 벤처업계도 남의 말만 할 때가 아닌 듯 싶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