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마피아<17>
내가 보기에는 음성적인 돈은 그에 못지 않은 거부인 인상을 주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러시아의 검은 돈을 국외로 빼돌려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몇명 중의 한 명이었다. 미국의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 CIA간부였던 로버트 헤밍웨이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의 검은 돈이 해외에서 돌고 있는 규모를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개략적으로 추산되는 돈은 미화 3000억달러였다.
러시아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돈이 수십 명의 특권층과 마피아의 소유가 되어 해외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알렉세이비치처럼 스위스 은행에 비밀구좌를 만들어 관리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유럽이나 미국에 실제 은행을 만들어 자신의 돈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검은 돈 세탁장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 소련이 몰락할 무렵, 정확히 말하면 고르바초프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가 실패할 무렵에 CIA를 비롯한 서방의 첩보라인에 하나의 골든 포인트가 생기기 시작했오. 이 골든 포인트란 구 소련의 상당수 돈이 유럽과 미국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정보였지. 그 전에도 이미 상당한 액수가 러시아가 아닌 국제 무대로 숨어들고 있었지만 그때 절정을 이루었지요. 이념과 체제가 흔들리고 권력구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특수한 위치에 있던 권력층과 마피아가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거야. 거기에는 KGB간부 일부도 가담되어 있었는데, 일부 정통 국수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KGB간부들이 우리 CIA에 이들의 돈을 차단하는 일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지요. 서방의 첩보기관 협조가 없으면 새어나가는 그들의 외화도피나 숨어 있는 돈을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었거든. 국제 정의로 보면 우리가 협조를 해주었어야 했지만, 우리는 거절했지.
거절한 이유를 대라면 좀 치사하지만, 그 많은 돈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스며드는 것을 왜 밝혀서 도로 찾게 해주겠나 하는 생각이었지. 그때만 해도 소련은 우리의 최대 적국이었으니까.
그때 방관하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는데, 결국 그것은 현재의 러시아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거요. 그 무렵에 해외로 빠져나간 돈은 약 200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지. 구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연합이 생긴 이후에 국제 통화기금을 비롯한 국제 금융계에서는 공산주의가 다시 소생되지 않고 자유 개방시장이 성공되게 하려고 많은 자금을 대주었지, 그런데 그 상당수 자금도 특권층에 의해서 해외로 빼돌려졌던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