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닷컴 위기와 M&A

이민화 메디슨 회장

1995년 한국벤처기업협회의 창립이래 불과 채 5년도 안돼 한국은 전세계 유례없는 벤처발전을 이룩했다. 200여개의 벤처기업이 8000개 이상으로 증가했고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된 벤처정책을 수립했다. 코스닥·벤처기업특별법·주식옵션 등 많은 정책들이 한국을 세계에서 벤처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닷컴기업으로 불리는 인터넷 벤처기업은 이러한 벤처발전사에서도 극히 최근에 진화된 경우다. 아직도 한국 벤처기업의 65%가 지식기반 제조업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작년초 필자는 과연 한국에서 인터넷기업이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 당시 제대로 된 닷컴기업은 50개 미만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닷컴기업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그 이유는 한국의 벤처환경이 코스닥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비교우위를 갖췄고 여기에 한국인의 네트워크 정신이 발현됐기 때문이다. 여하튼 세계에서 미국 다음의 인터넷 강자로 순식간에 부상한 것이다. 급성장에 필요한 자금은 코스닥 신화를 바탕으로 벤처캐피털·엔젤캐피털·대기업까지 가세해 지나칠 정도로 풍부하게 조달됐다. 이러한 자금들 모두가 코스닥 등록을 통한 엄청난 이익의 실현을 전제로 공급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투자자금들의 전제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게 되면서 바로 닷컴 위기가 현실화된 것이다. 수익모델을 코스닥 등록 심사에 강화하면서 닷컴기업들의 등록 확률이 낮아지게 되고, 여기에 코스닥의 주가 하락이 겹치면서 코스닥 등록을 전제로 한 닷컴붐이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닷컴 위기의 극복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볼 때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닷컴기업들은 임계질량에 이르기 전에는 수익의 실현이 어려워 본질적으로 영업수입보다는 외부투자에 의존하게 되고, 이러한 투자는 미래에 투자회수가 가능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어찌하여 수천개의 닷컴기업들이 코스닥 등록이 가능하겠는가. 이제는 코스닥이 닷컴, 나아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자금의 회수처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문제해결의 열쇠일 것이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많은 처방들은 대부분 일리가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새로운 벤처지원책,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심 향상, 코스닥 등록 기준의 완화, 기업 평가방법의 개선 등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은 아닐 것이다. 자본의 논리는 단순하다. 돈이 되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투자자금의 회수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바로 인수합병(M&A)에 있다. 이미 미국 투자자들의 자본 회수방법은 주(主)가 M&A요, 부(副)가 기업공개(IPO)가 되고 있다. 98년 미국의 M&A시장 규모가 나스닥의 12배에 달하고 있는 것에 주시해야 한다. 소수의 우량기업들이 선택되어가는 곳이 나스닥이라면 다수의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이들 우량기업에 M&A됨으로써 이익실현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건전한 먹이사슬인 것이다.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을 M&A하는 것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21세기 국제경쟁을 하기 위한 제대로 된 사고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과거의 사고의 틀에 묶여 새로운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벤처의 육성은 지원책이 아니라 건전한 생태계, 즉 먹이사슬의 형성에 둬야 한다. 각자의 이기심이 승화되어가는 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기본사상인 것이다.

즉, 우리의 과제는 M&A의 활성화에 있다. 모든 제도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M&A 역시 마찬가지다. 편법적인 상속, 경제력의 집중, 부당한 내부거래 등 그림자에 해당하는 문제 때문에 벤처 육성의 가장 큰 과제인 M&A의 신속하고도 과감한 도입이 늦어져서는 안된다. 사전규제는 풀어서 전체의 자원 효율성을 올리고, 사후감독은 강화해 부당한 행위자를 퇴출시키는 것이 기조가 돼야 한다.

당장 몇 가지는 즉각 시행이 요구된다. 우선 기업 합병을 위한 주식스왑이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기술기업의 객관적 측정을 위한 기술거래소 등의 평가에 대해선 당국의 인정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기업의 평가는 지식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것이다. 닷컴기업의 평가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기에 평가 인프라는 한국의 핵심역량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벤처기업특별법을 통해 정책에서의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하고 코스닥을 통해 벤처 직접금융 시장의 세계적인 사례를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M&A를 통해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M&A제도의 효과는 과거의 코스닥이 만든 효과의 5배 이상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