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붕(大鵬)과 뱁새

북해의 끝에 「곤」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살고 있다. 곤의 크기는 몇천리에 달한다. 곤이 성장하면 「대붕」이 된다. 대붕은 날개를 한번 펼치면 그 날개폭이 구만리 장천을 뒤덮는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전설의 새, 바로 대붕의 모습이다.

정보통신의 미래를 가늠할 IMT2000사업자 선정을 위한 사업계획서 제출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IMT2000은 정보통신분야는 물론 21세기 세계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간통신사업이 정부의 사업허가가 있어야만 하는 사업이라는 의미에서 규제사업이라고 한다면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대붕처럼 국내 통신시장 전체를 장악할 만큼 큰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닌다.

IMT2000을 앞두고 정보통신부 입장에는 외형적으로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복수표준으로 하되 업계자율에 맡긴다」는 것이 바로 대전제. 대붕의 뜻이다.

24일 정통부 기자실에서는 해프닝이 있었다. 동기식을 주장하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장비 제조업체들이 사업자들의 비동기식 선호에 반발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의 파급효과를 우려한 나머지 비동기식 대표주자인 LG정보통신도 뒤이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문제는 동기식 우월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한 당사자들. 삼성전자·현대전자·텔슨전자 등 장비 및 단말기 제조업체는 그렇다치고 비동기식 IMT2000시스템을 개발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까지 가세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TRI는 정보통신분야 연구개발은 물론 중요고비 때마다 기술정책방향을 제시했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그간 통신사업자 선정심사 때마다 ETRI 연구원들이 심사위원들로 다수 참여했다. 이번 심사 때에도 ETRI가 심사위원에 들어간다면 심사위원이 이미 동기식의 편을 든 셈이다.

지금 대덕연구단지에서는 250여명의 연구인력이 밤을 새워 비동기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ETRI 대표가 동기식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을 그 시간에도 이들은 비동기식시스템을 연구중이었다.

정통부 입김아래 있는 준공무원 신분의 ETRI가 굳이 왜 업체가 마련한 자리에 나왔을까. 그만큼 정부는 동기식을 관철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던 것일까.

정부가 「2동 1비」를 주장한다는 이야기부터 「정부개입설」 「상부개입설」 「빅딜설」 등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정통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통부가 이를 「복수표준 선정을 위한 업계자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정통부는 심사기준, 사업권 선정 「원칙론」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붕」이 아닌 「뱁새」의 속내를 들켜버린 듯 하다.

<정보통신부·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