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인터넷바로보기 10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본연의 핵심역량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또다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인터넷비즈니스 시장을 문어발식 확장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그 결과는 뻔합니다.』(인터넷벤처기업 H사 J 사장)

『자유경쟁이 요체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이라고 해서 인터넷사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 역시 잘못된 것 아닙니까. 기업의 속성이 이윤추구인데 그 대상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업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지요.』(S그룹 L임원)

요즘 인터넷 사이트상에서는 대기업의 인터넷사업 진출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대기업 진출이 순수한 닷컴기업들을 죽인다는 극단론에서부터 오프라인의 강점을 가진 대기업의 시장진출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닷컴업체들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그 대안으로 온/오프라인 통합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터져나오는 이같은 목소리들은 각기 명분은 있어 보이지만 설득력면에서는 점수를 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닷컴업체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기업은 e비즈니스를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특정한 바운더리를 정해 시장진입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다른 역차별임에 틀림없다. 기업의 시장진입과 퇴출은 어느 한쪽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시장기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걸러져야 한다.

물론 이렇게 걸러지기까지의 폐해가 클 경우는 문제가 된다. 특히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는 대기업 속성상 이들이 e비즈니스를 잘못할 경우 초래할 부작용은 만만치 않은 수준일 것임은 분명하다.

『IMF사태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의 비즈니스는 잘못될 경우 국민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정확한 로드맵 없이 그저 대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 아래 자본을 앞세운 마구잡이식 시장진출이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인터넷기업가협회 K 사장)

사실 대기업들이 e비즈를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도 바로 「대기업은 e비즈를 잘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게 닷컴업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피상적이거나 감정적인 접근보다는 다각적인 연구가 뛰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들은 닷컴업체와 비교하면 오프라인상에서 막강한 기득권과 함께 든든한 자본도 소유한 것으로 비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닷컴업체와 비교해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기득권의 실체는 별반 대단한 게 아니다. 최근 공정위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우리나라 대그룹 산하 업체들은 아직도 많게는 전체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계열사간 내부거래로 보전해주고 있다. 기득권의 상당부분이 그룹이라는 핵우산에서 나온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든든해 보이는 자본 역시도 대부분은 은행 차입금이다. 운영자금을 코스닥 등 발행시장에서 모아 무차입경영을 하는 순수 닷컴업체와는 분명 다르다. 상당수의 벤처업체들이 대기업과의 경쟁을 불공정게임으로 보는 이유도 사실 그룹시장과 차입자본을 등에 업은 대기업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여전히 시장점유나 시장장악에만 매달리고 e비즈니스의 키워드인 「고객만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닷컴업체들은 자신 있다는 표정이다.

최근 대기업들 사이에 열풍이 부는 e마켓플레이스만 봐도 그렇다. 초기에는 다같이 모여 손잡고 사진도 찍고 어깨동무도 하다가 정작 실행단계에 가면 얼굴 붉히고 찢어지기가 일쑤다. 주도권 싸움 때문이다. 결국 S 재벌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는 L그룹과 H그룹이 들어가지 않는 식이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졌던 행태가 고스란히 재연되는 셈이다. 심지어는 같은 그룹내에 계열사끼리도 이해관계 때문에 컨소시엄이 깨지기도 한다. 제휴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를 높인다는 e비즈니스의 기본정신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 벌써부터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삼성·SK·LG·한화·코오롱 등 국내유수의 대기업들은 분사정책을 통해 e비즈니스 시장 진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그룹 구조본에서 설립한 가치넷을 정점으로 삼성fn, 피씨뱅크 등 계열사별로 운영중인 유사사업만도 3∼4개에 이른다. 삼성이라는 기본시장과 수요가 있는 한 「맨 땅에 헤딩하는식」의 순수 닷컴업체보다 앞선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자본독점에 따른 이같은 중복투자는 물론 해당기업의 결정사항이다. 옆에서 뭐라고 말할 사안은 아니다.하지만 경쟁관계의 협력모델이 사실상 불가능한 대기업의 e비즈니스로는 해외업체는 물론 국내 닷컴업체들도 이기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지금 대기업들이 할 일은 핵심역량과 관계없는 마구잡이식 시장진출보다 자체 운영중인 사업의 e비즈니스(이를 편의상 대문자 E비즈로 표기한다)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계열사내 E비즈니스도 제대로 못하면서 닷컴 업체들이 잘하고 있는 작은 e비즈니스 시장에 잇따라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외 대기업에서 보듯이 자체 E비즈를 통한 비용절감이 우선이고 e비즈시장은 E비즈가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에 온라인 업체와의 진정한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괜히 순서를 바꾸니까 「2세 상속수단」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부 김경묵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