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89) 벤처기업

러시아의 마피아<29>

『나는 술장사는 할 수 없습니다.』

알렉세이비치가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컴퓨터 이외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컴퓨터 이외에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 역시 사업가인데 그렇게 고집하지는 않지요. 다만 장사 성질이 내 취미에 어느 정도 부합해야겠지요.』

『당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가운데는 유통구조 자동화시스템이 있는 것을 압니다. 알다시피 러시아는 땅이 매우 넓고 유통구조가 획일화되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쪽은 양곡이 풍부하지만 각종 광물은 시베리아쪽에서 생산됩니다. 대규모 생필품 공장이 있지만 그것이 우랄산맥을 넘어 유럽평원으로 오려면 수십 일이 걸립니다. 이러한 유통구조는 고질적인 적체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전국 판매망이 없어요. 이것을 통합하고 통제하는 유통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할까 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일이고 그 일을 최 사장에게 맡기는 대신 다른 비공식적인 일도 해줘야 합니다.』

『비공식적인 일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두려움부터 앞섰다. 그가 마피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공식이란 말이 나올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끔 정부에서 허가받은 밀거래를 합니다.』

『허가받은 밀거래도 있나요?』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도 암시장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그것은 허가받은 불법 유통구조였습니다. 따지지 말고 도와주시오.』

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불법적인 일이란 그것이 설사 허가를 받아 공인되고 있다고 해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덴호수 별장에 데리고 갔고 나타리야를 불러 수청까지 들게 했다. 그런 일을 시키려고 나의 환심을 샀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나로서는 속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무기와 술을 밀거래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세관에는 통관하는 물품 시스템이 모두 프로그램화되어 자동 통제되고 있지요. 이 통제 시스템을 비틀어 놓는 일입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시오.』

나는 기가 차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주 기발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불법적인 일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