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90) 벤처기업

러시아의 마피아<30>

나는 그에게 건성으로 대답하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일단 일반 유통구조 자동시스템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불법적인 일은 러시아의 컴퓨터 전문가를 시키라고 하였다. 우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도 그 정도는 충분히 응용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었고 한계였다.

마피아 조직은 표면상 아무런 흔적이 없어서 어느 기업체가 마피아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러시아 전산도 합법적이면서 독립된 기업체였지만 알렉세이비치가 대주주라는 사실과 경영진이 그가 심어놓은 심복들로 구성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해 봄에 나는 러시아에 두 가지 업종을 수출했다. 하나는 공장 자동화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유통시스템이었다. 알렉세이비치가 만들어 달라는 불법적인 유통 구조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몰랐지만 아예 거절하였다. 내가 키워놓은 회사는 한국 국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속으로 나가고 있는 마당에 국제 시장에서 도덕성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암초와 같은 일은 결제로 받을 외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을 해도 외상이었고 대신 원자재로 가져가라고 하든지 내국화로 결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르크화나 달러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행스럽게 마피아와 관련이 있는 업체와 일을 했기 때문인지 스위스 은행구좌를 통해 즉각 미화를 송금받을 수 있었다. 외화가 없다고 하지만 필요하면 즉각 수억달러의 현금을 결제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타샤의 남편 라스토푸친을 만나서 나는 그 점을 물어보았다.

『외화가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상당수의 달러가 적어도 수천억달러의 현금이 외국으로 나가 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제할 방도는 없지요. 그것은 연합 이전 연방시절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구 소련때 생긴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세워지고도 외화는 계속 해외로 빼돌려졌고 관료와 마피아가 나누어 가지는 고질적인 일은 계속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한때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슬로건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 마피아를 소탕할 수 있는 조직은 마피아 자신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