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만 되면 퇴근하기 급급한 연구원과 행정원들이 앞다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억눌렸던 근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를 찾아 제각각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더 남아있다가는 숨막혀 질식할 것 같기 때문이죠.』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생명공학, 그 총 본산인 대덕연구단지내 생명공학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현재 연구소 모습을 전하는 말이다.
『연구소내에서는 비판이나 불만의 소리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불만표출 10분후면 세작의 입을 통해 기관장에게 곧바로 보고되고 이어 인사위원회가 열려 바로 징계당하기 때문입니다. 확대간부회의 때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예전에는 많았으나 지금은 아예 없습니다.』
연구소를 걱정하는 한 간부급 연구원의 하소연이다.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지 1년 5개월을 맞는 생명연의 이같은 모습은 기관장의 독단적이고 편협적인 기관 운영과 리더십 부재, 모럴해저드에서 비롯됐다는 게 연구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초기 개혁 드라이브 정책으로 침체됐던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연구원들은 연구소를 떠나거나 대거 벤처창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생명연의 한 축을 이뤘던 미생물이나 뇌의학분야·분자생물학연구 등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것. 특히 BVC센터에 첨단 바이오분야 벤처기업을 입주시켜 육성하겠다던 당초 취지와는 달리 농업분야나 식품첨가물 등을 주로 개발하는 벤처기업으로 채워졌다.
더욱이 5년간 매년 3억원씩 지원받는 3건의 국가지정연구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특정연구원이 기관의 지원 공문만 과기부로 보내면 떼논 당상이라고 애달프게 협조요청을 하는 것에 대해 기관장이 해당자가 반개혁세력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단초로 생명연내 책임급 연구원들이 동학사 회합을 갖고 연구소발전협의회를 구성하는가 하면 이들이 급기야 기관장 해임건을 담은 연판장까지 돌리는 사태로 확대됐다.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업무협조는 더욱 이뤄지지 않고 기관장은 다시 이를 징계하고, 이에 회의를 느낀 연구원들이 잇따라 연구소를 떠나 이직하거나 벤처창업에 나서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 바이오 붐 조류에 편승해 국내 생명공학 산업을 정상궤도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이제 생명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누군가의 용단이 필요한 때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