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통신기업이 서비스업체의 장비우선공급권을 획득하는 대신 저리·분할납부 등 금융상의 혜택을 주는 「벤더파이낸싱」 방식을 선택, 영업이 크게 늘면서 국내 장비업체들의 설자리가 더욱 비좁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해외장비업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운용기술을 바탕으로 벤더파이낸싱을 일반 대기업, 인터넷서비스업체(ISP) 등으로 확대할 움직임을 보여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국내 통신 장비업체들을 옥죄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외 다국적 기업의 벤더파이낸싱 공세가 그동안 해외장비업체간의 제품경쟁에서 최근에는 국내 장비업체가 개발, 생산하는 제품까지 확산되면서 국내 장비업체들이 장비를 납품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두루넷은 40만대분의 케이블 모뎀 및 사업자 장비입찰을 실시하면서 벤더파이낸싱을 내세운 모토로라측에 장비 공급권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가 네트워크 사업부문에서 벤더파이낸싱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토로라와 제품 공급권을 둘러싸고 경쟁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케이블모뎀 시장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벤더파이낸싱보다는 납기, 성능 등이 장비업체선정의 기준으로 작용했지만 최근 수급상황이 안정되면서 금융제공을 포함한 가격조건이 일순위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실상 금융 조건부문에서 밀려 이번 입찰에서 탈락한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장비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장비도 내년부터는 수급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여 한국통신을 제외한 다른 통신사업자에게 제품공급을 위해서는 벤더파이낸싱이 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도 자체적으로 벤더파이낸싱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하나로통신의 한 관계자는 『올해까지 투자할 자금은 마련된 상태지만 내년에는 자금여력 때문에 벤더파이낸싱 형태의 ADSL장비 공급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올해 투자여력이 악화되면서 벤더파이낸싱을 선호하고 있다』며 『그러나 국내 업체 중에서는 벤더파이낸싱을 진행할 만한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 등 극히 일부업체에 그쳐 사실상 국내업체가 장비를 국산화하고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