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존심 무너진 정통부

자존하면 자존심이 생긴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하면 제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면 제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지 못한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일 게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방식 선정을 앞두고 정통부는 세번 「자존심」이 상했다. 유럽방식인 비동기식이 대세였던 IMT2000시장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데서 우리는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자존의 길을 잃었고 이 때문에 외국기술 도입이라는, 천문학적인 로열티 지불이라는 치명적 결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두번째는 「업계 자율로 기술표준을 결정하라」는 말 때문에 비롯됐다. 「업계」라는 포괄적인 잣대를 빌어 정통부가 자존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으나 업계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덕분에 「사업권 선정, 주파수 배정」이라는 막강한 힘을 갖고도 정통부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정부가 복수표준을 정하고 사업자들이 정부의 의도대로 비동기식 단일표준을 선정한 것과는 근본이 달랐다. 「세계최초의 CDMA 상용화 국가」라는 화려함이 뒷덜미를 잡았다.

세번째는 IMT2000 기술표준협의회의 구성. 「정부개입은 없다」던 정통부가 3개 예비주자 모두 비동기를 선호하자 급기야 일정까지 늦춰가며 협의회를 만들었다. 정통부는 정부 본연의 역할을 협의회에 떠넘기며 자존심을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협의회는 정통부 의도대로 동기식 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라는 궁색한 결론을 끌어냈다.

스스로 서지 못한 정통부 덕분에 자신이 기술표준을 선택해야 하는 서비스 사업자의 자존과 자존심도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사업자들은 자신의 중장기 사업전략에 입각한 기술표준을 선택하지 못하고 협의회에서 만든 합의문에 의존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제조업체나 서비스 사업자, 이를 지켜보는 소비자의 자존심도 동강나 버렸다.

<정보통신부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