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와 자본을 절묘하게 결합, 「기술혁명」의 엔진에 어떻게 기름을 부어넣느냐가 실리콘밸리의 마술이자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실리콘밸리에서 인수합병(M&A) 컨설팅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브레너그룹의 마이클 G 로이 부사장의 말이다.
첨단 정보기술(IT)의 경연장인 실리콘밸리. 세계 최고의 기술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는 이곳 실리콘밸리 벤처업계에는 요즘 매니지먼트 돌풍이 일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이라도 경영진의 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실리콘밸리 벤처업계는 요즘 다른 벤처기업에서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이름있는 전문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려는 바람이 불고 있다. 통상적으로 벤처기업은 연구개발에 주력, 기업을 종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관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큰 배의 선장같은 CEO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실리콘밸리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전문 CEO들의 몸값이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는 경영능력이 타고난 사람이라면 굳이 벤처를 창업하지 않고도 전문 CEO로서의 활동만으로도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새너제이주립대 윤석중 교수는 『시스코의 존 챔버스나 플랜트로닉스의 로버트 세실처럼 스톡옵션을 포함, 1억달러 안팎의 거금을 확보하는 CEO를 흔히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라고 강조했다.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은 실리콘밸리를 받쳐주는 핵심 인프라중 하나인 벤처캐피털들의 투자 및 심사 기준에서도 그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은 주로 시장의 크기나 예상 시장점유율, 기술력에 초점을 두고 투자가 이루어졌으나 갈수록 경영진의 관리능력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명망있는 CEO나 관리자 영입으로 기업의 평가가 달라지며 벤처캐피털들의 투자 프리미엄이 달라진다.
새너제이 소재 한국소프트웨어인큐베이터(KSI)의 박영준 소장은 『시장규모(terrian), 비즈니스전략(theme), 시장창출 타이밍(timing), 경영진의 관리능력(team), 기술적 우위(technology) 등 벤처캐피털 5가지 핵심 투자기준인 이른바 「5t」 중에서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바로 관리력, 즉 「team」』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실리콘밸리에서는 요즘 매출이나 수익이 없어도 핵심 경영진의 면면에 따라 대형 펀딩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획기적인 네트워크 장비 개발을 진행하며 매출도 없는 상태에서 최근 550만달러대의 대형 펀딩을 추진, 주목받고 있는 하프돔시스템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프돔시스템스의 찰스 구 사장은 『실리콘밸리에선 매니지먼트 능력이 투자자들의 중요한 결정 포인트이며 기업 성패의 50%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다』며 『하프돔도 제품이 출시되고 펀딩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면 더욱 더 능력있는 전문 CEO를 영입한 후 자신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한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리콘밸리에서 점차 기술이 무시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첨단 기술(cutting edge)의 진열장인 실리콘밸리에서의 기술은 이제 가장 기본적이자 필요충분조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기술력이나 시장성이 취약한데도 불구, 비즈니스모델에 매니지먼트 능력만 높다고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국내 벤처기업의 실리콘밸리 진출 지원 등을 위한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얼리엑시트닷컴의 리처드 박 사장은 『실리콘밸리에서는 남다른 기술력과 비즈니스모델을 바탕으로 해서 조직을 잘 관리해 팀워크를 높이고 이를 마케팅에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삼박자를 고루고루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