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현주소>5회/끝-한국인, 한국벤처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 있는 해외정보통신벤처지원센터(i·PARK). 정통부가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올초 설치한 이 곳엔 최근 들어 한국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기 위한 각종 세부 업무에서부터 현지 마케팅, 파트너 선정, 펀딩(자본유치), 기술이전, 정보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다.

i·PARK를 실리콘밸리 입성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우선 i·PARK 입주를 타진하기 위한 e메일이나 전화를 통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벤처의 본고장 실리콘밸리행을 추진하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을 전개하기 위한 첫 단추로 실리콘밸리가 하나의 상징물처럼 다가온 것이다.

물론 국내 금융시장 냉각으로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우선 살고보자는 식으로 펀딩 등 자본조달에 상당부분을 할애, 실리콘밸리행 열기가 다소 식은 것은 사실이다. i·PARK 안성진 센터장은 『연말까지 80개 업체 입주를 목표로 4차 입주신청을 받고 있는데 지난 7월 3차때에 비해 신청률이 저조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앞으로도 벤처의 요람 실리콘밸리를 찾는 한국 벤처기업들은 급증할 것이란 게 현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e머신즈, 코리아닷컴(두루넷) 등 국내 정보통신 기업들이 나스닥에 입성하면서 두껍게만 느껴졌던 실리콘밸리의 벽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예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국내에 역진출하는 사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엔진기업을 창업, C넷에 7억달러에 매각하고 일약 벤처스타의 반열에 오른 후 재창업한 와이즈넛을 비롯해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하프돔시스템스, i·PARK 인근에서 MPEG2트리밍 기술을 개발중인 하이콤 등 실리콘밸리에서 먼저 창업한 한국계 벤처를 찾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단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의 실리콘밸리 진출도 최근 부쩍 늘어나 현지 한국계 벤처기업에 시드머니를 대고 있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를 비롯해 한국기술투자(KTIC), 한국IT벤처투자, 스틱IT벤처투자, 동양창투, 골든게이트(삼성물산) 등이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벤처캐피털들이다. KTIC의 경우는 아예 현지법인을 설립해 운영중이다. 또 많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현지에 직접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잦은 왕래를 통해 실리콘밸리 한국계 및 본토 유망벤처를 열심히 찾고 있다.

미래의 벤처스타를 꿈꾸며 실리콘밸리의 유명 IT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미국행에 오르는 한국인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연방이민국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취업비자(H-1B)를 받아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인 총 1691명. 아직은 중국이나 인도 등 경쟁국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지만 벤처의 본고장에서 경험을 쌓기 위한 한국인들의 진출은 앞으로 크게 늘 전망이다. 최근엔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한국인과 한국벤처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현지 한국계 벤처인들의 모임(네트워크) 결성도 일대 붐을 이루고 있다. 실리콘밸리 최대 한국계 벤처모임인 한미기업가협회(KASE)를 비롯해 전문직 종사자 모임, 대학교수 모임, 스탠퍼드 한국인 모임, 벤처캐피털 모임 등 크고 작은 네트워크 결성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는 국내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사전 준비 소홀과 현지적응 실패로 초기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박영준 코리아소프트웨어인큐베이터(KSI) 소장은 『국내 벤처기업들이 대부분 아무런 준비없이 진출했다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전했다. 특히 영어구사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현지 네트워크와 융화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한국인과 한국벤처가 적지 않다.

지난 2월에 스탠퍼드대 방문교수로 나온 오해석 교수(벤처지원포럼 회장)는 『실리콘밸리 범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이미 각종 전문가 모임 3개를 만들어 운영중』이라며 『국내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 진출시 가장 고려해야할 점은 현지 네트워크에 잘 동화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먼저 현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